진정한 대화 없는 부부의 위기
스미스 부부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결혼하였다. 매일 저녁 7시면 함께 식사를 하고, 침실을 꾸미고, 다음날 아침이면 각자의 차를 몰고 직장으로 향한다. 금슬 좋은 완벽한 부부로 보이지만, 결혼 6년 만에 권태기를 맞으면서 결혼생활의 문제가 드러난다.
첫 만남의 열정은 식어버리고 서로를 이어줄 아기도 없었고, 성적인 관심조차 온데간데 없었다.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공감 없이 서두른 결혼의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지만. 스미스 부부는 권태기 탈출을 위해 정신과 의사를 찾는다.
부부지만 자신의 정체를 완벽하게 속여 왔다. 평범한 회사원 노릇을 하던 남편도 아내도 사실은 일급 킬러였다. 어느 날 암살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된다. 신분노출과 임무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조직으로부터 명령을 받는다. 48시간 내에 상대를 없애라는. 상대를 제거하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다. 어제의 부부는 오늘의 적이 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죽이기 위한 싸움을 벌인다. 결혼 생활동안 진정한 대화 없이 살아온 부부가 이런 위기 상황을 이겨낼 믿음이 있을 리 만무했다. 모든 게 상대방 탓이며, 자신은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앙큼한 배우자 때문에 가정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배우자로서의 믿음을 증명해줄 단서를 애써 기억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배신감은 커질 뿐이었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공이 들어야하는 인내의 과정이지만, 결별은 단순하고 성급해서,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는 부부간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아내는 날 죽이려는 계획을 했으면서도, 날 철저하게 속여 왔어. 뭔가 미심쩍었지만 그것이 사랑이라고 여기며 깊이 빠져 들었지. 그런데 이렇게 배신할 줄이야."
아내와 편안했던 식사 공간은 암살현장으로 둔갑하고 만다. 부엌에는 얼마나 많은 무기들이 즐비한가. 한때는 사랑을 키워왔던 가재도구가 무기가 되어 한판 전쟁을 치르는 장면은 어느 부부나 싸움을 할 때 가지는 증오심과 공격 환상을 잘 보여준다.
이혼을 위해 법원으로 가던 부부가 마지막으로 상담이나 한번 해보자며 진료실을 찾았다. 2년 전부터 남편이 뭔가 미심쩍었는데, 드디어 아내는 남편의 확실한 외도의 단서를 잡았다는 것이다. 차 안에 긴 머리카락이 발견된 후, 돌이켜보니 남편이 그동안 유난히 외모에 신경을 쓰고, 몰래 베란다에서 전화 통화하던 기억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아이와 시집을 위해 10년간을 나 없다는 식으로 살았는데, 이젠 남편이 날 의부증 환자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둘의 육탄전은 과격해졌고, 아내는 상해진단서를 몇 장 모아놓았다고 한다. 원래 경상도 남자는 말이 적지 않느냐고 남편은 변명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혼자는 외로워서 고립의 느낌을 희석하기 위하여 부부라는 공동체를 선택했는데, 지금 외로움의 깊이는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고 말한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결혼은 증오심을 극복하게 할 뿐 아니라, 증오심을 불타게 할 수 있는 공간이며, 웃고 사랑하고 의사소통을 배우는 곳이라고 했다.
대화의 단절은 불신을 불러오고, 나중에는 서로의 거대한 몬스터(괴물)가 되고 만다. 마치 이런 신세가 아닐까. '배고픔 뿐인 그대와/ 배고픔조차 없는 내가/ 피하듯 서로 만나/ 배고픈 한 세상을 이룩하는 것을/ 고장 난 신호등처럼/ 바라봅니다'(최승자님의 시)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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