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사위로 절망 훌훌 털어요"
원래는 무용가였다. 그러나 지금 류분순(51)씨의 공식직함은 한국 댄스 테라피 협회 이사장이다. 무용·동작 심리치료 전문가가 그의 직업이다. 무용과 동작을 통해 정신적 갈등과 병적 이상징후를 치료하는 게 그의 일이다. 당연히 무용가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서는 무용가의 리듬과 절도가 묻어난다.
안동 하회 출신으로 중학생 시절 발레에 푹 빠졌다. 재능을 알아 본 고교시절 은사가 장학금을 주선, 대구로 나와 고교와 대학을 마쳤다. 대학 졸업 후 대구에서 무용가로 이름을 날렸고 전문대학 강좌도 맡았다. 그러나 잘나가던 대구 생활은 남편의 반대로 끝났다. 결혼 후 5년간이나 주말부부로 지낸 남편이 최후 통첩을 해왔다.
모든 것을 버리고 서울로 옮긴 그를 알아주는 서울 사람은 없었다. 우물안 개구리였다. 그러나 그렇게 움츠리고 살 수는 없었다. 대학 시간 강의도 나가며 무용 발표전도 이어 갔지만 빼어난 독창성이 없이는 안무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하던 그에게 심리학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무용과 심리학의 접목을 꿈꾸며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무용가의 아내를 가정에 묶어 두려다간 가정도 버리고 아내도 잃는다"는 선배 무용가의 말에 남편도 동의했다.
독일서 만난 공부가 무용·동작 치료였다. 2차대전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미국과 유럽의 학자들이 고안한 신 개척분야였다. 전쟁으로 억눌려 진 분노와 절망을 춤과 동작으로 풀어내는 심리치료법이었다. 독일서 무용 치료의 원조 미국으로 달려갔다. 10여 년 만에 미국 무용치료협회가 주는 전문가 자격증을 땄다. 국내에서는 그가 유일하다.
사람의 몸은 언어보다 먼저 반응한다고 믿는다. 놀람과 기쁨, 분노와 환희는 말보다 동작에서 먼저 드러난다는 말이다. 우울증이나 정신 분열증을 앓고 있는 이가 찾아오면 말보다 먼저 손을 잡는다. 언어 대신 동작으로 인사를 건넨다. 동작은 곧 리듬으로 전달된다. 그런 동작과 리듬이 말을 잃고 사는 사람들의 말문을 연다.
7년째 그를 찾아오는 이가 있다. 먹고 자는 일이 삶의 전부일 뿐 감정변화도 보이지 않던 정신분열증 환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 엄청난 뚱보였던 그가 지금은 남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날씬한 아가씨로 변했다.
치료 전문가란 명칭 때문에 의사들과의 갈등은 없을까. 무용·동작 치료의 효과를 놓고 의사들 사이에 찬반양론이 있다는 그의 말은 갈등이 없지 않다는 의미다. 찬성하는 의대 교수들이 만든 임상예술학회에서 그의 역할도 적잖다. 무용 치료가 아직 생소하던 시절 국립정신병원에서 예술치료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제는 정신과 치료에서 예술 치료도 일정부분 지분을 갖고 있다. 환자위주의 치료에 예술치료는 안성맞춤이라고 강조한다. 의사 신부 수녀 교수 등 전문가 대상 특강도 주요한 그의 일이다.
대학 4학년 딸과 고 3 아들이 있지만 공부는 각자 알아서 하게 한다.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는 친구를 잘 사귀는 노력이 삶에 있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서울사람이 되면서 변화를 싫어하는 경상도 기질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끔 들르는 고향 하회나 대구의 반가운 얼굴들이 내 것만을 고집할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논설위원seo123@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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