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박주영 뒤집어보기

입력 2005-07-14 11:34:13

대구가 낳은 축구 스타플레이어 박주영(FC 서울)이 한동안 전국 축구 팬들을 들끓게 했다.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의 박주영이 아닌 박주영의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박주영이 잘 하면 한국이 잘한 것으로, 박주영이 못하면 한국이 부진에 빠진 것으로 평가됐다. 그의 소속팀 FC 서울도 박주영의 팀으로 전락한 상태다.

대표팀에서 프로 무대로 돌아온 그는 잠시 부진했으나 K 리그 전반기 막판 2경기에서 5골을 몰아넣으며 '축구 천재'의 면모를 재가동했다. 그에 대한 언론과 축구 팬들의 성원은 2006년 독일월드컵과 그 이후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이 시점에서 '웬 딴죽 걸기냐'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진정으로 그가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축구 천재' 박주영에 대한 평가를 한번 뒤집어 본다.

기자가 박주영의 플레이를 처음 본 것은 청구고 2학년 때이다. 당시에는 1년 선배 김동현(수원 삼성)에게 가려 있을 때였다. 이때부터 수년 간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현란한 드리블과 탁월한 골 결정력 등 그의 천재성을 여러 차례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는 '축구 천재'의 능력을 검증받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의 우승으로 끝난 2005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는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였으나 그는 오히려 이름 값에 먹칠을 했다.

3경기에서 그가 내세울 것은 프리킥 골 한 방뿐이었다. 아시아나 국내 대회에서 보여줬던 현란한 드리블은 다리가 길고 거친 유럽·아프리카 선수들에게 번번이 제지당했다. 브라질 선수들 앞에서는 개인 돌파가 초라해 보였다. 페널티킥을 넣지 못하는 실수도 했다. 무엇보다 박주영의 팀 한국은 예선 탈락했다.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참가에 따른 피로 누적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플레이는 '축구 천재'와는 거리가 멀었다. 국내 프로무대에서도 그는 언론에 좋은 점만 포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박주영이 넣은 골이 오프사이드였지만 심판이 불지 못했다"는 축구 팬의 지적도 있고 "다리를 걸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반칙을 할 수 없었다"는 수비수의 하소연도 있다. 관중들과 카메라의 눈이 그에게만 쏠려 있는데 어떻게 불리한 판정을 하고 반칙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대구 축구 팬들의 입장에서 보면 박주영은 시민구단 대구FC 입단을 외면한 선수다. 돈을 좇는 프로 세계에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만 "왠지 밉더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박주영 이전에도 언론은 이동국, 고종수, 이천수, 최성국, 정조국 등 많은 '축구 신동과 천재'들을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성공한 축구 선수로 대접받고 있지만 '천재'나 '신동'의 반열에는 올라서지 못했다. 반면 현역 중 한국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언론과 축구 팬들의 관심 밖에서 성장했다는 점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박주영이 '축구 천재'로 등극하느냐 하는 것은 그의 몫이지만 주변의 도움도 필요하다. 그가 지나친 칭찬과 과도한 관심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김교성기자 kg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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