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남문화인물사인가

입력 2005-06-25 11:09:10

한국을 꽃피운 그들을 아는가

무한에 도전하여 영원히 잊지 못할 자유로운 영혼을 창조해내는 사람들. 바로 순수한 영혼을 지닌 문화, 예술인들이다. 영남의 중심지역인 대구, 경북의 문화 예술인들은 때로는 타는 목마름으로 삶을 노래했고, 때로는 생사를 초월한 작품을 추구했다.

일제 치하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젊은 시인이 있나 하면, 분단된 조국에서 동토로 건너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월북 화가도 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을 스크린에 담은 영화인도 있고, 공연도중 무대에서 삶을 마감한 예술인도 있다.

한때 대구, 경북은 한강 이남의 문화, 교육 수도가 아니었는가.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프라이드가 없다. 문화의 체취를 보듬어 우리 것으로 살아 숨쉬게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산업화에만 치중하는 바람에 지역이 낳고, 세월이 기른 문화인들의 업적과 예술적 향기는 보듬지 않았다. 생산성이 낮아도 위기이지만, 시민들이 발 딛고 사는 곳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못할 때 더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더 이상 늦추지 말자. 지금이라도 신비로 다가서는 대구, 경북의 문화·예술인들을 찾아보고, 그들의 자유혼을 느껴보자. 문화는 마르지 않는 샘이며, 지역 경쟁력의 근간이다.

매일신문은 창간 59주년(7월 7일)을 맞아 새로 기획한 '영남 문화인물사'를 통해 시공을 뛰어넘는 문화인물을 조명해본다. 다만 너무 대중적으로 알려졌거나 현존인물은 제외했다.

1862 한국 근대문인화의 거두 팔능거사 서병오(~1936)

1873 나라 빼앗긴 울분 붓에 담은 경제인 서예가 박기돈(~1947)

1876 시(詩)서(書)화(畵) 삼절 김진만(~1933)

1878 무욕과 방랑벽의 '대구판 장승업' 허기석(~1935)

1887 해인사 수호한 신필 임환경(~1984)

1893 극예술연구회 창립한 연극인 홍해성(~1957)

1897 시서화에 전각까지 능한 독립운동가 이상정(~1947)

'캔터키 옛집' 번역한 대구 혼성합창의 창시자 박태원(~1927)과 합창운동의 선구자 박태준(1900~1986)

1900 이미지즘의 선구시인 이장희(~1929)

? 손기정 가슴에서 일장기 떼낸 소설가 현진건(~1943)

문화인 사랑방을 차리고, 화가 이인성을 키운 서동진(~1970)

1901 일제에 '빼앗긴 들'을 되찾으려던 열혈시인 이상화(~1943)

'조선복식고' 저자이자 민족예술의 이론가인 이여성(~?)과 리얼리즘의 인민화가 이쾌대(1913~1965)

억척으로 대구문화의 씨를 뿌린 백기만(~1969)

영제시조 전승한 이기릉(~2000)

은밀한 시어에 민족적 울분 담은 오일도(~1946)

1902 대구가 낳은 서화계의 대가 서동균(~1978)

1903 친일 논란에 퇴색된 양악사의 큰별 현제명(~1960)

대구에서 첫 독창회 연 성악가 권태호(~1972)

1904 월북화가 김용준(~1967)

개성적 화풍의 외톨이 서양화가 황술조(~1939)

'황성옛터'를 작사한 시인, 연출가, 배우 왕평(~1943)

'임자없는 나룻배'의 영화감독 이규환(~1977)

청포도 시인 이육사(~1944)와 문학평론가 이원조(1909~1955)

1905 춘향전을 무대에 올린 '아귀도'의 작가 장혁주(1952년 일본 귀화)

1906 화랑입구에서 타계한 신동 서양화가 손일봉(~1985)

대구에서 첫 양화 개인전 연 화가 박명조(~1969)

1907 경향파에서 구인회로 돌아선 영화인 김유영(~1939)

'물새 한마리'의 순수한 영혼 윤복진(~1986)

향토회 창립한 서양화가 배명학(~1973)

1908 '꺼래이', '적빈'의 여류소설가 백신애(~1939)

비판적 시대정신의 시인 이설주(~2002)

국내 첫 누드전 연 화가 서진달(~1947)

1909 포항을 사랑한 검은 갈매기 문인 한흑구(~1979)

1910 자살한 무대예술가 이상춘(~1936)

1912 현대시조 중흥에 이바지한 시조시인 이호우(~1970)와 여동생 이영도(1916~1977)

'순정해협' 등 32편의 영화 남긴 감독 신경균(~1981)

대구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1950)

1913 용비어천가 해제 펴낸 학자 김성칠(~1951)

경주 북천을 소재로 한 巫女圖 김동리(~1995)

1914 해방후 최초의 시 전문지 '竹筍'으로 대구 정신 되살린 시인 이윤수(~2002)

'따따따 〃어린 손으로~' 어린 음악대 지은 김성도(~1987)

벽오동 심은 뜻의 여류 소설가 장덕조(~2003)1915 임나일본부설을 압도한 세계적 석학 김석형(~1996)

LA에서 타계한 '나그네 설움' 가수 백년설(~1980)

일본의 H씨상을 수상한 '낙동강 시인' 최화국(~1996)

해방후 대구에서 첫 시집 낸 황윤섭(~1951)

초창기 오페라 운동 이끈 바리톤 이점희(~1991)

청송이 낳은 화가 금경연(~1948)

1916 불행한 시대를 그린 요절화가 김용조(~1944)

시대를 앞서간 경주 출신 화가 박지홍(~1991)

민요적 가락에 나그네 풍경 담은 박목월(~1978)

'날이 갈수록'의 시인 박훈산(~1985)

1920 '승무'의 청록파 시인 조지훈(~1968)

1924 '껍데기는 가라'던 시인 신동집(~2004)

1925 한국예술가곡의 선구자 김진균(~1986)

1932 일본에서 높은 평가 '온돌 야화'의 윤학준(~2003)

글·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jhchung@imaeil.com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김영욱기자 mirage@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