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짖는 개'가 아쉽다

입력 2005-06-09 11:28:37

도둑이 담을 넘기 전 가장 먼저 살피는 게 있다. 집 지키는 개다. 그래서 생겨난 속담이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정 뿐 아니라 국가나 지역 사회,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위기를 미리 알려주는 '짖는 개'가 있어야 나라와 지역 사회, 기업이 발전한다. '짖는 개'를 업신여겨 패망하거나 낭패를 당한 사례는 동서와 고금을 통틀어 무수히 많다.

도둑이 나타나면 짖어야 할 개가 짖지 않았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양이나 떨며 비위를 맞춰주는 애완견에게 정신이 팔려 주인이 밥을 제대로 주지 않았거나 먹고 잠만 자는 개를 우대한 때문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짖는 개'가 시끄럽다고 주인이 입을 틀어막았을 수 있다.

어느 조직이나 '짖는 개'와 애완견은 따로 있다. 애완견은 평상시 온갖 재롱을 피워 주인에게 적잖은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도둑이 들었을 때는 짖지 않는 애완견보다는 위기를 알려주는 개가 필요하다. 따라서 위기 때 '짖는 개'를 평소에 길러두었느냐에 따라 국가와 지역사회, 기업의 흥망이 좌우된다. '짖는 개'를 버려두고 타성(惰性)대로 애완견만 끼고 돌았다면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위기의식의 부재는 타성에서 나온다. 타성은 정작 위기인데도 위기인 줄 모르게 한다. 에스키모들은 늑대사냥을 할 때 차가운 얼음 위에 날이 시퍼렇게 선 칼날을 위로 향하게 꽂아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칼날에다 피를 묻혀 둔다. 굶주린 늑대들은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들고 칼날에 묻은 피를 핥는다. 늑대는 날이 선 칼날에 혓바닥을 베이지만 차가운 냉기에 혀가 마비돼 자신의 혓바닥이 칼날에 베이고 피가 나는지도 모른다. 계속 칼날의 피를 핥고, 그 피가 자신의 피라는 것도 모른 채 서서히 죽어 가는 것이다.

타성은 이처럼 자신을 죽이는 무서운 병이다. 변화에 저항하는 암이다. 무엇이 변화를 거부하게 하고 타성에 물들게 하는가. 편안함과 기득권이다. 어느 조직이나 이러한 타성에 젖은 '월급 도둑'과 '자리 도둑'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위기를 외부 환경이나 남의 탓으로 돌리는 습성이 있다.

잘못을 비판하면 '이너 서클'을 통해 매장해버리거나 입을 열지 못하게 한다. 위기를 제대로 진단해 대처하지도 않는다. 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아도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버린다. 망하는 기업이나 지역 사회는 이처럼 '월급 도둑'과 '자리 도둑'들이 득세하는 조직이다.

특히 무한 경쟁과 적자 생존의 정글 법칙이 지배하는 기업 세계에선 '짖는 개'의 존재 유무가 기업의 생존을 결정한다. 적잖은 비판이 존재하지만 삼성이 초일류 기업의 반열에 오른 것도 최고 경영자(CEO)를 비롯한 경영진의 위기 의식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955년 매출 상위 100대 기업 중 현재 100위 권 안에 남아있는 기업은 7개 사에 불과했다. 나머지 93개 사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고 첨단산업과 지식기반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탈락한 것이다.

생존 기업들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가. 글로벌 경쟁체제 아래에선 세계 1위 기업도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 한국,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약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계 1위의 미국 자동차업체 제너럴 모터스(GM)도 경쟁력 회복을 위해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GM, 소니 등 초우량 기업들이 최근 흔들리는 이유는 무얼까. LG경제연구원은 '쇠퇴 기업의 6가지 징후'란 보고서를 통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것을 권고한다. 그 징후는 △현재의 성공에 안주한다 △부서간 장벽이 높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위기대응책 등 각종 시스템만 늘어난다. △보신주의가 팽배한다 △인재들이 회사를 떠난다 △진실한 정보가 위로 전달되지 않는다 등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쇠퇴 징후를 해결해야 하나. 최고 경영자(CEO)가 변해야 한다. CEO의 의식만 바뀌면 해법은 나온다. 묵은 조직일수록 조직의 노화와 변화에 대한 거부감으로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을 서로 떠넘기거나 문제를 묻어두려는 타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 일소할 수 있는 사람은 CEO뿐이다. 이와 함께 현실에 안주하는 애완견을 내치고 변화와 혁신을 외치는 '짖는 개'를 살려내야 한다. 미래 비전의 부재로 젊은이들이 떠나고 있는 대구와 대구지역 기업들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인재는 '짖는 개'들이다.

조영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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