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정치판에 뛰어들면...

입력 2005-05-12 08:42:08

통과의례라는 게 있다. 한 인간이 새로운 상태나 지위, 신분, 연령 등에 이를 때 치르게 되는 의례나 의식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에는 혼례 등 각종 형식의 통과의례가 있다.

그렇다면 정치권에 진입하는 경우에도 통과의례가 있을까, 있다면 이를 통해 정치 신인을 어떻게 변모시키게 되는 걸까?

평소 잘 알던 사람들중 정치권에 뛰어든 몇몇을 통해 그 안에 있을 때는 밖에 있을 때와는 다른 뭔가를 체득하게 된다는 걸, 한 단면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 됐다. 다른 게 아니라 눈빛이 차갑고 매서운 쪽으로 돌변해 버린다는 점이다. 이전 모습과는 영 딴판으로.

물론 정치인들 모두가 이런 식으로 변해왔다고는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지인들중 정치권으로 들어간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이 같은 생각에 공감하는 쪽이 적지않을 것이다. 정치판이 어떻기에, 얼마나 살벌한 곳이기에 한 인간을 이렇게 바꿔놓게 되는 걸까.

최근에 재'보선도 있었던 만큼 선거를 떠올려 보자. 당선 문제는 한 출마자의 정치생명을 좌우하게 되는 만큼 절체절명의 목표가 된다. 때문에 후보캠프에서는 '전략' 회의, 바닥표 '공략', '교두보' 확보, 마타도어(흑색선전)…등등의 군대식 용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상용어가 돼버린다. 또한 후보를 지원하는 운동원들은 물론, 선거가 과열되면 이들을 지켜보던 유권자들까지 아군과 적군 식으로 패를 가르게 되고 결국, 선거구가 전쟁터를 방불하는 상황으로 치닫기도 한다. 이 같은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당선자이고 보니 '눈빛'이 평상심을 유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선거를 통해 '단련된' 눈빛은 의정활동에서 여지없이 발휘된다. 특히, 정국현안을 놓고 팽팽히 맞서게 될 경우 여야 각당은 당소속 의원들을 총동원, 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하거나 상임위 등에서 상대측을 향해 눈을 부릅뜬 채 맞서게 된다. 삿대질이나 멱살잡이를 목격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당 지도부가 지켜보고 있기에 평의원들로서는 갖은 힘을 다 낼 수밖에 없다.

또한 이 같은 공방전에는 갓 통과의례를 치른 초선들이 앞장서게 마련인데, 정치인으로 일종의 '수습' 과정을 치르는 셈이다. 당 대표는 국회대표연설, 대변인은 성명이나 논평을 통해 전의를 북돋운다. 상황이 이쯤되면 전쟁터로 착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그렇다고 의원들은 항상 눈에 힘을 주고 지낼 수도 없는 처지이다. 특히 유권자들에게는 눈빛을 한없이 부드럽게 하는 등 갖은 표정연기를 다해야 한다. 만약 이렇게 할 수 없다면 정치생명은 끝장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는 '고난도'의 연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봉대 정치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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