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차선·신호등 필요없었지…"
"그때만 해도 공기가 좋았지. 저 멀리 팔공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잖아…."
대구의 북구, 중구, 동구를 잇는 칠성교는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많이 변했다.
97년 10월 확장공사를 거치면서 그 폭이 32m의 왕복 6차선 도로로 넓어졌다는 것이 외견상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세월 속에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다리를 건넜던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1960년대. 칠성교 위 도로에는 차선이 없었고, 신호등이나 횡단보도도 없었다.
저 멀리 차가 오면 건너던 발걸음을 멈추고, 사람이 지나가면 차들은 속도를 늦췄다.
파라솔 아래서 경찰관이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해도 사고는 많지 않았다.
당시 시내버스는 대중의 발이었다.
아침이면 버스에 오른 학생들의 도시락에서 시큼한 냄새가 풍겨났다.
갈래머리를 땋은 머리에 빵떡 모자를 쓴 안내 차장이 문을 탕탕 두드리며 "오라이(출발)"라고 외치면 버스는 내달렸다.
중학교 때 사진에 나오는 30번 버스를 탔다는 조인출(52)씨는 버스가 반야월에서 명덕로터리를 거쳐 서부정류장, 화원까지 운행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다리 너머로 보이는 신도극장. 그곳에는 최무룡, 신성일 주연의 '대전발 0시 50분', 신영균, 문희의 '미워도 다시 한번' 등의 영화를 보러 오기 위해 몰려든 관객으로 복도까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TV나 비디오가 없던 시절, 극장은 가장 인기있는 데이트 코스였다.
다리 아래 신천은 물이 참 맑았다.
이영문(57)씨는 "어른들은 멱을 감고, 개구쟁이들은 물장난을 쳤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신천 양편 가장자리로 신천대로와 신천동로가 뚫려 대구의 남북을 관통하고 있다.
지금 극장은 다른 용도로 바뀌었고, 한복입고 유학 온 아들의 반찬거리를 들고오던 시골 어머니들의 모습도 자취를 감췄다.
이제 다리 위에는 쉴새 없이 차들이 지나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세월은 삶의 여유로움마저 빼앗아간 듯하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사진: 1960년대 칠성교 앞의 평화로운 풍경(위). 요즘에는 신천대로가 가로막아 다리 너머 구 신도극장 건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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