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철이 되면 농사꾼들이 들에서 일하다가 밥을 먹지. 이 때 먹기 전에 꼭 밥 한 숟갈을 먼저 떠서 멀리 던지면서, "고시레!" 하거든.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오늘은 이 '고시레'에 얽힌 이야기를 하지.
옛날 옛날에 고씨 성 가진 처녀가 살았는데, 가난해서 남의 집 허드렛일이나 해 주고 겨우겨우 먹고살았어. 하루는 냇가에서 빨래를 하다 보니 물에 복숭아 한 개가 둥둥 떠내려오더래. 그걸 주워 먹었더니 그 날부터 배가 불러오는 거야. 아기를 밴 거지. 달이 차서 아기를 낳고 보니 아들이거든. 그래 이름을 '도선'이라고 짓고 키웠어.
도선이는 병도 없고 탈도 없이 잘 커서 어른이 됐는데, 크면서 참 용한 재주를 하나 배웠어. 무슨 재주인고 하니 점치는 재주야. 누가 뭘 물어도 그냥 점괘 하나만 쑥 뽑으면 다 알아맞히거든. 아무 날 비가 오겠다 하면 틀림없이 비가 오고, 아무 곳에 벼락 치겠다 하면 틀림없이 벼락이 치고, 이러니 그 재주가 참 용하긴 용하지.
그러다가 도선이 어머니가 병들어서 죽었어. 그래 장례를 치러야 되겠는데, 아무리 봐도 무덤 쓸 만한 자리가 없더래. 하릴없이 도선이가 어머니 관을 메고서 팔도강산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어. 무덤 쓸 만한 자리를 찾으려고 말이야.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한번은 높은 산에 올라가서 이렇게 아래를 굽어보니까 참 좋은 자리가 하나 있더래. 그런데 그 자리에 벌써 웬 기와집 한 채가 떡 들어서 있는 거야. 아무리 봐도 어머니 무덤 쓸 자리는 그 자리밖에 없는데, 거기에 기와집이 들어서 있으니 어떻게 해. 밤이 되기를 기다려서 몰래 그 집에 들어갔지. 마루 밑을 파고 몰래 어머니를 묻으려고 말이야. 그런데, 막 호미로 마루 밑을 파려고 하니까 방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기를,
"여봐라 도선아, 네 어머니 모실 곳은 여기가 아니라 저 건너 징게명게들이니라."
이러거든. 도선이가 그만 깜짝 놀라서 그 집을 뛰쳐나왔어. 아, 자기 이름도 알고 어머니 무덤 쓰려는 것도 다 알고서 그러는데 어쩔 수가 있어야지.
그래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마을 건너편 징게명게들에 가서, 들 한복판에다가 어머니 무덤을 썼어. 그래 놓고 도선이는 어디론가 가버렸는데, 그 다음부터 웬일인지 그 들에 농사가 안 되더래. 아무리 정성껏 농사를 지어도 가을이 되면 말짱 쭉정이만 나오더라는 거야.
이상하게 생각한 농사꾼 하나가 혹시나 하고 밥을 먹을 때마다 밥 한 숟갈씩을 떠서 도선이 어머니 산소에 바쳤어. 그랬더니, 그 이듬해에는 그 집 농사만 잘 되고 다른 집 농사는 안 되더래. 그래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밥을 먹을 때마다 도선이 어머니 산소에 밥 한 숟갈씩을 바쳤지. 그랬더니 아닌게아니라 그 다음부터는 그 들에 농사가 다 잘 되더래.
이 소문이 퍼지고 퍼져서 나중에는 농사짓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밥 먹을 때 도선이 어머니 몫으로 한 숟갈을 먼저 떠서 멀리 던지면서, "고씨네!" 했는데, 그건 도선이 어머니 성씨가 고씨라서 그런 거지. 그 '고씨네'가 나중에는 '고시레'가 됐다는 거야.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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