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병' 어떻게 이길 것인가

입력 2005-04-25 11:20:03

모의고사나 학교 시험이 다가오면 가슴이나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수험생이 많다. 이런 증상은 날씨가 따뜻해지는 4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학부모 가운데도 비슷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소위 말하는 '고3 병'과 그들의 어머니가 앓는 '고3 어머니 병'이다.

과거에는 대입 수험생들에게서 보이는 증상이었으나 요즘은 학년과 관계없이 초등학생에게서도 나타나곤 한다.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적 풍토가 갈수록 심화되고, 교육에서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면서 누구든 피해가기 힘든 병이 되고 있는 것. 정확한 원인 분석과 대책 수립이 없는 한 수험생과 그들의 어머니는 미래에도 이 병을 계속 앓게 될 것이다. 해마다 여러 기관의 전문가들이 이 병에 대한 다양한 예방책과 치료법을 쏟아내고 있지만 대부분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여기서 필요한 것은 역설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 땅의 모든 수험생과 어머니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치료의 출발점이다. 병으로 여길 게 아니라 삶의 한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험생과 어머니의 병은 어느 한쪽의 증세가 심해지면 다른 한쪽의 증세도 동시에 악화된다. 반면에 어느 한쪽이 좋아지면 상대도 즉시 좋아진다. 그러므로 이 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서는 각자의 노력과 더불어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신뢰와 사랑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좀 더 구체적인 원인과 대책을 짚어보자.

▶ 고3병의 원인

일반적으로 '고3병'을 수면 부족과 과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근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육체의 피로가 아니라 공부가 뜻대로 되지 않고, 기대하는 성적 향상이 일어나지 않는 데서 오는 심리적 불안이나 좌절감이 주된 원인인 것.

학교나 학원에서 자율학습을 한 뒤 자정 무렵에 집에 들어오는 수험생 자녀를 볼 때는 보다 객관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현관에 들어설 때의 지친 모습만으로 연민의 정이나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면 부모로서 최고 점수를 받기는 힘들다. 진정한 자녀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심하게 피로한 기색을 보이면 그날 하루를 알차게 보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맞다. 공부가 잘 되고 계획한 만큼 달성을 했다면 오히려 활기가 넘치고 몸놀림이 가벼울 것이다. 귀가할 때 극도로 지친 표정을 짓는다면 공부가 잘 안 돼 시간을 낭비했거나 바르지 못한 자세로 책상에 엎드려 있었기 때문에 계속 피곤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수험생과 학부모는 서로에게 진실하지 않다. 부모는 자녀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한다. 학생 자신도 학교 생활에 대해서는 어정쩡하게 넘기는 경우가 많다. 간섭과 잔소리,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귀찮기 때문에 공부한 척하고 그냥 넘어가 버린다. 그러나 마음은 편하지 않다. 계속해서 이런 날들이 이어지면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증세가 악화되면 만성적인 피로로 이어지고 시험이 다가오면 더욱 심해져 병원에 가야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 예방과 치료

'고3병' 치료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취감이다. 원하는 것을 이뤄내면 그때까지 쏟은 땀과 노력, 피로는 오히려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고3생 역시 할 수 있는 만큼의 계획을 세워 반드시 실천해 성취감을 쌓아간다면 생활이 즐거워진다. 하는 일에 신명이 나면 어려움을 기꺼이 참을 수 있고, 잠을 적게 자도 별로 피로를 느끼지 않게 된다. 수험생 입장에선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변명을 한다거나 핑곗거리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학생을 보면 가정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부모가 극성스러우면 자녀가 소심해지는 경향이 강하다. 평소에 잘하다가도 중요한 시험에 성적이 좋지 않은 수험생 뒤에는 부모의 만성적인 잔소리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부모는 무엇보다도 자녀를 믿어야 한다. 모든 것을 믿고 맡긴다는 자세를 보여줄 때 수험생은 더욱 의젓해지고 강한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할 게 아니라 내 아이 나름의 장점을 찾아 가능한 칭찬을 많이 해 주어야 한다.

어느 한 시험에서 기대만큼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수험생과 가족 모두의 대처 방법은 때로 최종 입시의 승패를 결정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먼저 수험생 자신은 꾸준히 노력하면 다음 시험에서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느긋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학부모도 일시적인 성적의 하락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한 번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해서 이를 평소의 생활 태도와 관련지어 나무라서는 안 된다. 다음에 반드시 만회해야 함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도 안 된다. 수험생 앞에서 다음에 성적이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 보여서도 안 된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데 안달하고 다그쳐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 바람직한 가족 관계

우리 주변에 고3은 황제이고 부모는 몸종인 집이 많다. 많은 고3 어머니들이 모든 일정을 자녀의 시간에 맞춘다. 그리고 스스로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다가 자녀가 기대만큼 못하게 되면 배신감을 느끼거나 심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대부분 수험생은 부모가 하루 종일 자신만 지켜보고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그냥 내버려두길 원한다. 부모가 극성일수록 자녀는 신경질적이 되거나 소심해지기 쉽다.

부모, 특히 어머니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모가 자신의 일이나 취미에 몰두할 때 자녀는 부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존경한다. 부자간에 혹은 모자간에 관계가 좋고 대화가 많은 집일수록 상호 간에 독립성을 존중하는 경향이 높고 각자의 일에 몰두한다.

부모와 자녀는 각자의 권리와 의무를 따지고 강요하기에 앞서 가족애를 바탕으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생활의 활력과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시험을 못 친 경우 등 시련과 좌절의 순간일수록 가족의 위로와 격려는 힘을 발휘한다. 시험이 끝나는 주말에 산이나 바다로 짧은 여행을 떠나보면 많은 것을 느끼고 새 힘을 얻을 수 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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