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향토인들-(16)언론계

입력 2005-04-23 08:49:47

한국 언론을 빛낸 대구·경북 출신 반골(反骨)들이 서울에 많이 살고 있다. 기자와 지사(志士)를 오가며 시대정신에 불을 밝히고 곡절 많은 현대사를 펜대 하나로 맞선 사람들이다. 기자직을 버리고 정·관계로 떠난 경우도 있지만 부당한 편집권 침해에 맞서 강제 해직까지 당하며 언론개혁에 몸담은 이들이 적지 않다.

동아일보 출신으로 남시욱(南時旭·71) 세종대 석좌교수와 남중구(南仲九·65) 동아일보 21세기 평화연구소 소장이 있다. 성씨가 같아 두 사람을 착각하는 이들도 많은데 고향까지 경북의성으로 똑같다. 경북중·고-서울대 정치과-동아일보까지 똑같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도 번갈아 맡았을 정도다.

남 교수는 언론계의 꽃으로 불리는 편집국장(87년)을 역임한 뒤 경영인으로 변신, 문화일보 사장(95~99년)을 거쳤다. 신문사 동료들이 하나 둘씩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을 때도 그는 기자의 자존심을 지켰다. 매서운 칼럼을 쓰며 기개도 잃지 않았다. 그는 '기자론'에 관한 책 3권(항변의 계절, 체험적 기자론, 인터넷 시대의 취재와 보도)을 냈으며, 현재 세종대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남 소장은 편집부국장(91년)과 수석논설위원(95년)을 거쳤고 '남중구 칼럼'으로 삼성언론상(97년)을 받았다. 런던 특파원 시절인 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가장 먼저 현장에 달려가 국제전화로 기사를 부르던 시절을 자신의 전성기로 꼽았다. 그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기금 이사와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이사장으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고, 지난달 연세대 신방과 겸임교수로 위촉돼 '신문 취재보도'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안동이 고향인 시사저널 금창태(琴昌泰·67) 대표는 중앙일보 출신이다. 수습 1기로 첫발을 뗀 뒤 사회부에만 10년을 근무, '경찰통'으로 불렸으며 이후 편집국장(85년)을 거쳐 대표이사(1999~2001)까지 올랐다. 수습시절 '공굴리기 도박단 검거' 기사로 중앙일보 1호 특종을 하기도 했다. 중앙일보에서 퇴직한 뒤 지난 2003년부터 시사저널 대표이사를 맡아 주간지 가운데 최고 발행부수와 흑자경영을 일궈냈다. 맏딸인 시조(33)씨도 신문방송학을 전공, 현재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텍사스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조선 조갑제(趙甲濟·60) 전 대표는 사실보다 신념에 우선하며 기자의 길을 걸었다. 청송 출신이지만 부산에서 학업을 마친 뒤 부산 국제신문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80년 광주 민주화 항쟁 때 휴가를 내고 현지에 잠입취재를 했다가 강제로 해직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84년 월간조선으로 옮겨 대표이사까지 역임한 그는, 권력에 대한 비판의 사명감을 놓지 않았지만 지나치게 보수우익 이데올로기를 천착해 왔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최근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뒤 평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조 전 대표는 "체력만 뒷받침되면 80세까지 기자생활을 할 생각"이라며 "특종에 대한 욕심과 열정이 기자직을 유지해온 비결"이라고 말했다.

직설적이고 쓴소리 잘하기로는 월간 '경제풍월' 배병휴(裵秉烋·64) 발행인만한 사람이 있을까. 김천(옛 금릉) 출신인 그는 경제신문인 매일경제에 입사(66년), 편집국장(89년)과 주필(99년)을 거쳤다. 매일경제를 나온 뒤에는 경제풍월을 창간, 필봉을 놓지 않고 있다.

그의 별명은 '배뱅이'다. 독설과 해학이 담긴 '배뱅이 굿'에서 착안된 별명처럼 동안(童顔)답지 않게 독설가라는 닉네임이 따라다닌다. YS정권 당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경제해법이 뭐냐'는 질문에 '정권을 바꾸면 된다'고 말했다가 방송출연이 금지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경제기사로 성에 차지 않았던지 관련 책을 10여 권이나 쓰고 스스로 경제잡지 발행인도 됐다.

방송위원회 성유보 상임위원(成裕普·62·경산)과 KBS 정연주 사장(鄭淵珠·59·경주)은 여러 모로 닮은 점이 많다. 해직 언론인 출신인 두 사람은 '개혁성'이 인사의 주요 기준이 되는 시대를 맞아 중용됐지만 오랫동안 절치부심하며 시대적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경북고(61년 졸)를 나온 성 위원은 68년, 경주고(65년 졸) 출신의 정 사장은 70년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박정희 정권에 항거, 75년 언론자유수호운동을 벌이다 해직됐다. 정 사장은 78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투옥된 뒤 82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성 위원은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창립하는 등 재야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한겨레신문이 창간되면서 다시 만났다. 성 위원은 89년 한겨레신문 초대 편집국장으로, 미국에 있던 정 사장은 워싱턴 특파원으로 복귀했다.

성 위원은 이 신문사를 나온 뒤 현실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96년 민주당에 입당, 경기 성남·분당지역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이후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을 역임하며 언론개혁에 앞장섰다. 정 사장은 한겨레 논설위원으로 있다 2003년 KBS 사장으로 부임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영호(金榮豪·59) 공동대표도 곡절 많은 언론인이다. 대구출신인 그는 한국일보 기자로 출발(72년)했지만 80년 당시 경제부 재직 시절 신군부에 협조하지 않고 제작을 거부, 강제해직됐다.

호구지책으로 잠시 현대그룹 계열사에 취직했지만 다시 언론계로 돌아와 세계일보 편집국장(97~98년)을 역임했다. 99년부터 언론개혁시민연대 신문개혁특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언론과 신문개혁을 외치고 정부 비판에도 앞장섰다. 최근에는 한국 언론의 발자취를 사회사적 관점에서 정리한 1천220쪽 분량의 '한국 언론의 사회사'를 출간하기도 했다.

언론사 사장들도 적지 않다. 권영빈(權寧彬·63) 중앙일보 사장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경북고(61년 졸)를 나왔다. 중앙일보 계열사인 '랜덤하우스 중앙'의 김영배(金榮培·62) 대표이사는 영주가 고향으로 권 사장의 경북고 한해 후배다. 김 대표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2001년)을 역임했고 권 사장은 한국신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경향신문에는 이상우(李祥雨·67) 전 경향미디어그룹 회장과 김학순(金學淳·62) 미디어칸 총괄대표이사를 빼놓을 수 없다. 공교롭게도 대구상고와 영남대를 똑같이 졸업한 두 사람은 기자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경영인으로 섰다.

경남 산청 출신인 이상우 전 회장은 한때 언론계에서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만 20세라는 최연소 기자로 영남일보에 입사한 뒤 대구일보 편집부장(64년)을 거쳐 31세 때 한국일보에 입사, 최연소(31세) 및 최장수 편집부장(62~82년)을 역임했고 가장 많은 일간지(스포츠 서울·스포츠투데이·파이낸셜 뉴스·굿데이)를 창간했다.

탁월한 경영수완으로 스포츠 신문사를 맡을 때마다 업계 최고로 일으켜 세웠다. 추리 소설가로도 유명해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그의 '불패 신화'는 광고시장 위축 등 언론계 전반에 불어닥친 한파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2001년 굿데이를 창간, 한때 스포츠 신문업계 1위 자리를 넘봤지만 경영난으로 지난해 12월 문을 닫았던 것이다.

김학순 대표는 의성이 고향이다. 대구상고(72년)과 영남대(79년)를 졸업한 뒤 경향신문에 입사, 편집 부국장(2000년)과 논설위원(2003년)을 거쳐 지난해부터 총괄대표직을 맡고 있다. 굿데이 폐간 이후 뒷수습을 이 전 회장의 후배인 김 대표가 떠맡은 셈이다.

한국경제신문의 CEO 자리는 지역 출신이 점령하고 있다. 한경 신상민(申相民·60) 사장은 문경 출신이고, 한경TV 김기웅(金基雄·53) 사장은 대구산(産)이다. 계성고(62년 졸)를 나온 신 사장은 합동통신과 동아일보를 거쳐 87년 한경에 입사, 95년 편집국장을 거쳐 지난해 3월 사장으로 부임했다.

현재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직도 겸하고 있다. 김 사장은 내외경제(현 헤럴드경제) 신문에서 기자생활을 시작, 80년 한경으로 옮겨 지난해 편집국장을 역임했고 지난달 한경TV 사장이 됐다.

이 밖에 MBC 애드컴 위호인(魏皓寅·60) 사장은 김천, 소년한국일보 문현석 사장(文顯奭·59)은 문경 출신이다.

전직 언론사 CEO는 작고한 분들을 제외하더라도 상당수 있다. 경북고 출신이 많아 이우세(29회·대구·서울신문), 권오기(32회·안동·동아일보), 김영수(34회·청도·MBC), 이상회(35회·대구·세계일보), 곽정환(36회·대구·세계일보), 황선필(38회·김천·MBC), 김정국(39회·의성·문화일보), 이채락(43회·경산·경향신문)씨 등이다. 또 비(非) 경북고 출신으로 장명석 전 경향신문 사장(예천) 등이 있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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