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 댐에 담긴 태백 준령의 맑은 물로써 국토를 기름지게 하리라. 풍요를 약속하는 이 댐은 영원한 민족번영의 원천수로서 자손 만대에 길이길이 남으리.'
안동댐 정상부에 서있는 댐 준공 기념탑. 때묻은 동판에 새겨진 '자손만대에 축복을 내리는 댐'이라는 글귀가 30년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1976년 축조 당시 불리던 '인공호수'라는 단어는 어느덧 사람들의 입에서 사라졌고 최근에는 호수 사랑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댐이 어엿한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동댐 이후 낙동강 유역에는 잇달아 크고 작은 댐이 들어섰지만, 댐을 둘러싼 뜨거운 찬반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대안은 없을까. 안동댐 30년을 되짚어보면서 향후 건설될 댐의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본다.
〈편집자주〉
◇중화학공업 성장의 밑거름
"우리나라 공업은 이제 바야흐로 새 시대로 진입합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자주국방과 공업입국을 위한 중화학공업 육성을 선언합니다.
"
1970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강력한 공업입국을 천명했다.
닉슨 독트린 등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강대국의 자국 이기주의로 치닫는데 대한 위기감이었다.
이 같은 공업 드라이브는 1971년 국토종합 5개년 개발계획과 낙동강 등 4대강 유역권 개발이 확정되면서 더욱 구체화됐다.
포항·구미·창원·울산·마산 등 낙동강 중·하류지역에 집중된 대규모 공단의 공업용수 확보를 위한 강 상류 댐건설은 필수적인 일. 국비 326억5천900만 원, 아시아개발은행(ADB) 차관 등 외자 1천715만5천 달러 등 모두 436억100만 원을 들인 안동댐은 그렇게 탄생했다.
낙동강 최초 댐이다.
총 저수량 12억4천800만t 규모인 안동댐은 지난 30여 년간 매년 평균 9억2천600만t의 물을 하류로 방류해 왔다.
이 가운데 절반인 4억5천만t은 중하류 지역 공단의 생활·공업용수로 공급됐다.
또 준공 후 지금까지 328만2천245㎿h의 전력을 생산, 산업공단 등에 공급해 왔다.
장마철 낙동강 홍수피해 예방과 갈수기 하천 유지수 방류에 따른 낙동강 수질개선도 안동댐의 성과다.
안동댐관리단 허연강(48) 운영과장은 "지난 2002년과 2003년 태풍 매미·메기 때 댐이 없었다면 하류지역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라며 "하천 유지수 방류는 쏟아져 나오는 생활 오·폐수를 희석시켜 낙동강 자정작용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잘못된 위치선정 '수질문제 백화점'
안동댐은 이처럼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했지만 태생적 한계로 '불치병'을 앓고 있다.
공업용수 공급용이란 목적에만 치중, 주변 기후조건과 환경문제 등은 처음부터 간과하는 바람에 '수질문제 백화점'이란 오명을 안을 정도로 심각한 수질오염에 시달리고 있는 것.
안동정보대학 환경시스템공학과 신덕구 교수 연구에 따르면 안동호 바닥에 침착된 카드뮴(Cd)의 농도는 토양오염 기준치(1.50㎎/㎏)를 훨씬 초과했다.
2.34㎎/㎏(도산면 서부리)에서 5.155㎎/㎏(예안면 절강리)로 측정되는 등 한때 법정 기준치의 최고 3배가 넘었다는 것.
이 같은 원인으로는 낙동강 상류인 봉화·울진군과 강원도 태백시 등지에 방치된 폐광이 꼽힌다.
이들 지역에는 금·은·구리·아연·중석·납 등을 캐내던 폐광 100여 개가 방치돼 있다.
환경당국은 카드뮴이 물에 녹지 않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갈수기에는 댐 바닥이 드러나면서 흙먼지가 날리는 등 사람과 동물이 카드뮴에 노출될 우려가 높다.
호수에 서식하는 어패류의 카드뮴 중독도 마찬가지.
더욱이 안동댐 주변은 '이타이이타이병'이 발생했던 일본 후지야마 지역과 광산 인근이라는 등 입지 여건이 비슷해 체계적인 역학조사가 필요하다고 학계와 시민단체는 지적한다.
안동시 임동면 마동리에 살다 수몰민이 된 한동완(41·안동시 남후면)씨는 "부모님이 원인 모를 척추골다공증을 앓아 걷지도 못하는 등 카드뮴 중독 유사증세를 보여 공해병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댐은 또 비가 적게 내리는 지역에 건설돼 수량 부족으로 여름철에는 녹조현상, 겨울철에는 표층·심층수 '턴 오버(turn over)'에 의한 물빛깔 변색현상 등을 드러내고 있다.
안동댐 유역은 지난 30년간 강수량이 연간 전국 평균치(1천283㎜)를 밑돈 해가 20차례가 넘고 만수위 유지에 충분한 강수량을 기록한 해는 고작 4, 5년뿐이었다.
이에 따라 안동댐은 한번 물이 흘러들면 거의 2년은 머물러야만 하류로 방류할 수 있는 지경이다.
◇하부상빈(下富上貧)식 수혜
경북관광개발공사는 올해부터 안동댐 주변에 골프장과 리조트 등 대규모 관광휴양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시큰둥하다.
수몰 이주민 임종욱(67·도산면 서부리)씨는 "수몰민 1세대들이 거의 저세상 사람이 된 마당에 이제야 왜 난리를 부리는지 모르겠다"며 "생계수단을 잃고 죽지 못해 살아 온 수몰민들이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고 차갑게 말했다.
실제 댐 주변 주민들에게는 피해의식만 자리 잡고 있다.
소양강댐이 들어선 이후 '호반의 도시'로 명성을 높인 춘천 같은 발전은 고사하고라도 농사일마저도 쉽잖다는 불만이다.
김재문(47·안동시 와룡면 산야리)씨는 "댐 물을 바라보면서도 가뭄 때 물 한 방울 이용할 수 없다"며 "선거를 앞두고 대형 양수장 설치 등이 거론되곤 했지만 모두 공약(空約)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볼멘소리는 2007년 낙동강 특별법에 따라 오·폐수 배출기준이 강화되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폐수를 배출하는 식품업체 등은 폐수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를 현재 80ppm의 절반인 40ppm 이하로 떨어뜨려야 해 경비 부담 때문에 공장 문을 닫는 업체가 속출할 것이라는 것. 댐 주변에는 아무 혜택 없이 희생만 강요하는 하부상빈(下富上貧)식 댐 수혜구조 탓에 안동댐은 적어도 지역민들에게 '축복의 댐'이 아닌 '원망의 댐'이 되고 말았다.
안동·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철우 "안보·입법·행정 모두 경험한 유일 후보…감동 서사로 기적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