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중국사람들은 부부란 '몇 번을 환생해도 다시 만나게 되는(生生世世常相聚)' 인연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부부간에 금이 생겼을 땐 칠거지악 등을 이유로 남편으로부터 헌 빗자루처럼 버려질 망정 여자가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죽을 때까지 한 남편만 섬겨야 하는(從一而終)' 것은 여성의 가장 큰 미덕이었다. 심지어 남편이 죽으면 정숙한 여자가 선택할 길은 딱 두 가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殉節)과 평생 수절하는 것 이었다.
◇'좋은 말은 두 개의 안장을 갖추지 않고, 훌륭한 여자는 두 남자에게 시집가지 않는다(好馬不備二鞍, 好女不嫁二男' 같은 말들은 여성에게 일부종사(一夫從事)가 절대 미덕임을 강조했다. '굶어죽는 것은 작은 일이나 예의를 잃는 일은 큰 일(餓死事小,失禮事大)'이라는 식의 관념들이 보이지 않는 사슬로 여성들을 얽어맸다.
◇중국 못지 않게 유교적 가치관을 중시했던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정혼자가 결혼 전에 죽어 평생을 홀로 산 여성들도 적잖았고, 청상의 몸으로 온갖 고생하며 자녀들을 키운 여성들도 많았다. 수절과부는 칭송의 대상이었지만 개가한 여성들은 집안의 수치거리였다. 그게 불과 20,30년전이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2004년 혼인'이혼 통계'는 지난 1980,90년대 이후 급속하게 다양화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결혼풍속 이모저모를 돌아보게 한다. 급증세를 보이던 이혼건수가 16년만에 처음으로 떨어졌고, 결혼건수는 8년만에 늘어났다. 특히 지난 해 결혼한 4쌍 중 1쌍이 재혼커플이란 점이 눈길을 끈다. 국제결혼의 급증추세와 연상녀-연하남 커플의 증가세도 눈에 띈다. 이젠 재혼도, 외국인과의 결혼도, 나이문제도 결코 장애요소가 아님을 보여준다. 결혼관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식으로 바뀌어간다 할까.
◇하지만 세칭 '황혼이혼'은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이혼부부 5쌍 중 1쌍은 20년 이상 함께 살아온 부부들이다. 지난 10년 새 5배나 증가한 수치다. 자녀 때문에 참고 참다 결국 황혼녘에 "이제라도 내 인생을 찾겠다"는 부부들이 늘고 있다는 거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 아끼고 사랑하겠노라'는 결혼서약도 이젠 시대에 맞춰 바뀌어야 하나, 조금은 엉뚱한 생각마저 드는 요즘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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