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생각-'필론의 돼지'를 읽고

입력 2005-03-28 11:17:39

'필론의 돼지'는 작가 이문열이 1989년 발표한 단편소설입니다. 제대병들을 수송하는 군용열차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작가는 위기의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본성을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막 제대를 하고 나온 주인공 '그'가 어쩔 수 없이 군용열차를 올라타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 안에서 '그'는 훈련소 입교 동기였던 홍동덕을 만납니다. 당시 홍은 두메산골에서 머슴살이를 하다 학력을 속여가며 입대한 순진한 시골뜨기였었죠. 하지만, 30개월간의 군생활은 홍을 세상 때가 가득한 얼치기 건달의 모습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열차가 한참 고향을 향해 가고 있을 때, 불량기 가득한 현역 군인 일당이 차에서 행패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대충 노래 한 곡을 부르더니 제대병들에게 강제로 돈을 뜯습니다. 그들의 강탈에 저항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한 명이 섣불리 도전하는가 했더니 오히려 검은 각반들 무리와 어울려 사라지자 강탈은 오히려 손쉬워지기만 했죠.

그러던 중 어디선가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100명이 고작 5명을 이기지 못하고 억울하게 당하다니 말이나 되느냐는 목소리는 무기력했던 제대병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그들은 검은 각반 5명을 덮쳐 집단구타를 시작합니다.

이 소동의 와중에서 '그'는 슬며시 다른 객차로 몸을 옮깁니다. 그곳에는 이미 홍이 자리 잡고 아는 척을 했습니다. '그'는 그 순간 필론의 돼지를 떠올립니다. 필론이라는 현자가 폭풍으로 흔들리는 배 위에서 봤다고 하는 그 돼지는 많은 사람이 절망에 빠져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쿨쿨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1.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합니다.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 봅시다.

2. 이 소설은 작가가 쓴 또 다른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도 매우 유사한 구조를 보입니다. 함께 읽고 비교해 봅시다.

3. 대학까지 나온 지성인인 '그'나 시골의 무지렁이인 '홍'의 행동에는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몰라서 행동하지 않는 '홍'과 알고도 행동하지 못하는 '그'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학교폭력

소설의 장소를 학교 교실로 옮겨보자. 소위 일진회 출신이라며 건들거리는 친구들이 교실 문을 벌컥 열고 나타나 학생들에게 동전을 요구한다. 그러자 학생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주머니의 돈을 털어놓는다. 또 일부는 그들과 친한 척 아양을 떨기도 하고, 일부는 못마땅한 눈초리를 보내기도 하지만 반항하는 친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 중 가장 속 편한 친구는 '필론의 돼지' 마냥 책상에 누워 잠이 든 학생일지도 모르겠다.

15년 전에 발표된 소설이지만 장소와 시점을 현대 어디로 옮겨놔도 비슷하게 적용 가능하다. 아마 인간의 본연적인 심리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다수의 경우 폭력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비슷하다. 괜히 맞지 않으려 나서지 않거나 외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비겁하다고 손가락질할 수만은 없다. 폭력'부조리에 맞서는 것은 그만큼의 희생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력을 외면하고 묵인하다 보면 더 많은 폭력을 견뎌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폭력에는 또 다른 폭력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행동 없는 지성

소설의 주인공 '그'는 참으로 무기력한 존재였다. 그는 문제를 알고는 있지만 어떤 행동도 취해보지 못한 채 힘에 굴복하고 만다. 한갓 무지렁이에 지나지 않았던 홍이나 대학을 나와 최고의 지성임을 뽐냈던 '그'나 열차 안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처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없었다. 이것이 그를 한없는 절망감으로 밀어넣으며 결국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홍에게 대한 증오감으로 투사시키게 했다.

특히 주인공 그가 "대의가 있다면 살인죄를 나눌 양심과 용기가 있었다"고 자기 변명을 하는 부분에 가서는 비열함의 극치를 보인다. 그는 남들보다 우월한 입장에 서서 다수의 폭력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건의 중심에 한 번도 서지 않으면서 문제만 간파하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애처롭기까지 하다.

▲가정폭력과 국가폭력

가정 내 폭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가정폭력은 집안사라는 이유로 타자의 간섭이 허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남의 집안 일에 간섭하는 것 자체를 폭력으로 간주하던 사회였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 가정 폭력을 가정 내 구성원이 감당해내기 힘들다면 사회적 시스템 차원에서 폭력예방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이런 가정폭력과 국가폭력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폭정을 행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외부 국가가 '폭정 종식'이란 이름으로 무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이란 내정간섭, 북한에 대한 압력 등이 좋은 예다.

흔히 주권국가에 대한 타국의 간섭은 외세의 침공으로 인식되지만 폭정 아래 신음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스스로 폭정을 극복할 능력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오히려 타국의 간섭이 반갑기까지 하다. 때문에 외세의 간섭을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반대로 꼭 필요하다고 말하기는 더 어렵다. 과연 내부의 폭력 문제에 대해 외부의 간섭이 허용되는 것은 어느 수준까지일까?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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