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화가 만난 사람-한국전통꽃일연구소 오픈 대구대 김태연 교수

입력 2005-03-07 16:20:06

"꽃일쟁이(花匠)를 아십니까?"

전통 풍속에서 길, 흉사 때 행사장을 조화로 장식하던 꽃일쟁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신비하게 사라져버린 꽃일의 맥을 찾아 궁중상화(床花)연구소를 전국 최초로 영천 대창면에 개관한데 이어 한국전통꽃일연구소를 오픈한 대구대 김태연(59)교수.

◆ 세계 박물관대회에서 터져나온 탄성

김 교수가 음식상에 쓰던 상화를 재현해내자 유럽과 미주에서 독점해오던 세계박물관대회(ICOM)를 아시아권에서 처음으로 서울에 유치했던 한국민속박물관은 만찬장 공식 선물로 채택, 귀빈들에게 선물했었다. 그러자 "아니, 음식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꽂다니, 왜죠?", "서구에서 케이크에 초를 꽂는 것보다 더 화려하고 정성이 깃들어있네요.", "한국의 문화저력, 놀랍습니다."는 갖가지 반응이 터져나왔다.

야니스 마카키스 그리스 크레타 옥외박물관장, 슈테판 엥겔스만 네덜란드 국립민족학박물관장, 리처드 커린 미국 스미소니언 민속박물관장, 마츠조노 마키오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장, 에바 게상 칼스트롬 스웨덴 국립세계문화박물관장 등을 포함한 세계박물관대회 참석자 600여명은 세상에서 듣도보도 못한 궁중상화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김교수가 지금까지 재현해낸 22종의 궁중상화 가운데 가장 간단한 홍도지간화(紅桃紙間花), 홍도지별건화(紅桃別建花)를 겨우 선보였는데도 말이다.

◆ 궁궐 잔치에는 태평성대 기원하는 3층 대수파련 써

"홍도간화는 불로장수의 뜻을 담아 잔치상에 간편하게 활용하던 꽃이었어요. 그러나 궁에서 큰 잔치가 열릴 때는 3층 대수파련(大水波蓮)이라고 해서 연꽃 세송이를 한가지에 매단 큰 꽃을 꽂았어요. 3층 대수파련(사진)은 국태민안과 태평성대를 기원하지요."

김 교수는 대궐경사(혜경궁 홍씨 회갑연, 조대비 팔순연 등)시 베풀던 진연(進宴)이나 진찬(進饌)을 장식하던 비단꽃이나 종이꽃을 만들던 화장(花匠)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달빛에 바래 신화가 돼버렸으나 그 흔적을 찾아 전국을 헤매고 다녔다.

"꽃일을 하는 분이 있다면 산간오지든, 절해고도이든 찾아다녔어요." 이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법. 이렇게 시간과 공을 들이면서 차츰 꽃일의 윤곽이 드러났다.

◆ 유난히 지화를 많이 쓰는 동해안 별신굿과의 만남

김교수는 음식상에 올리던 상화나 각종 행사장의 종이꽃이 민간신앙이나 종교 궁궐행사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고, 깃발을 많이 쓰는 남해안, 서해안 별신굿보다 동해안 별신굿에서 종이꽃을 더 많이 쓴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동해안 별신굿에는 다른 곳보다 종이꽃을 훨씬 많이 써요. 보통 6병 정도 하지만 큰 굿일때는 8병까지도 하지요."한때 별신굿은 미신이라고 해서 정부에서 막았으나 뱃길에서 풍랑을 만나고, 배가 파선하는 일도 잦아지자 어민들이 돈을 모아 굿판을 이어갔다. 동해안 별신굿을 따라다니면서 이 굿의 간판인물이자 호적 무형문화재 김석출(84)옹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 바리데기 공주의 환생 담은 김석출 옹의 살잽이꽃

김석출 옹은 최근 노환으로 인한 욕창으로 힘들지만 김 교수가 영천에 궁중상화연구소를 마련하자 업혀와서 귀한 살잽이(더부살이꽃'사진)를 펴 주었다. 5년간 잠재워 두웠던 살을 펴서 만든 김옹의 하얀 살잽이꽃에는 바리데기 공주의 환생설화가 담겨 있다.

경주 감포 앞바다 문무대왕릉에서 25년간 수륙재를 봉행하던 고 이도주 스님의 제자(김태숙)가 재현한 수륙재 작약, 88올림픽 때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봉원사에서 거행된 영산재의 꽃을 만든 황월화 스님의 유품, 서울굿의 명인인 이영희 처사가 만든 수팔연,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의 인간문화재 안승삼이 만든 애기씨꽃, 영산재의 지화장인 이기원 처사가 재현한 살모란 등이 김 교수가 재현한 궁중상화와 함께 전시돼 있다.

◆ 한번 쓰고 태워버리는 꽃일은 바로 정성

인공 재료는 전혀 쓰지 않고 완전히 천연소재로만 만드는 지화나 상화제작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 그리고 비용이 든다. 김 교수가 3층대수파련(사진) 한 작품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2~3개월.

천(비단, 무명, 인견)을 염색하고, 풀을 먹여 꽃모양을 오리고 인두질로 꽃을 표현하고 마섬유로 속심을 만든 뒤, 찹쌀 고두밥을 쪄서 치자물을 들인 꽃가루를 만들고 대나무나 싸리나무를 쪼개어 잎맥을 만들고 초록색 한지로 줄기를 만들고, 한지를 푼 종이죽으로 인형(남극노인)을 만들고 바느질로 동자옷을 깁고, 봉황과 나비를 만들고.

"이렇게 장엄하게 만든 꽃을 한번 쓰면 태워버리지요. 그러니 지금도 꽃일에 대한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요. 그러나 꽃을 만들면서 잡념을 없애고, 정성을 다하던 그 마음은 태워버릴수가 없지요."

◆ 22종의 상화에 대한 지적소유권 신청

김 교수가 재현해낸 상화는 고종때 만들어진 '진연의궤'에 나오는 어잠사권화, 수파련, 목단화 등 22종. 이 가운데 수파련은 자손번창과 부귀, 오이꽃(瓜子花)은 다산, 복분자화는 장수와 자손번창, 유자화는 아들, 월계화는 아름다운 청춘, 감꽃(枾子花)은 좋은 배필을 만나 가세가 번창하는 뜻을 담고 있다.

그동안 전통 화장이 하던 일을 재현해내느라 30여년간 정열을 다 쏟은 김 교수는 몇년뒤 정년을 맞게 되지만 동구 용계동의 조그마한 전세 집에 살고 있다. 자신이 살던 영천집은 궁중상화연구소로 꾸며 우리 문화의 저력을 자랑하는 센터로 쓰고 있다.

5월 14일부터 인터불고호텔에서 제2회 궁중상화전을 기획하고 있는 김 교수의 꿈은 단 하나. "아직 정부에서 관심을 쏟지 않아 멸실위기에 처한 꽃일쟁이들을 위한 모임을 갖고, 꽃일에 담긴 우리민족의 섬세한 문화혼과 손재주를 이어갈 후계자를 발굴, 육성하고 싶어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사진· 정재호 편집위원 jhchung@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