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의학 사이-태어나지 못하는 아이들

입력 2005-03-04 08:53:20

30대 중반의 한 부인은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 선천성장애의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태아가 정상아인지 염려되었다.

그래서 의사에게 철저한 산전 기형아검사를 부탁했다.

의사는 초음파검사는 물론, 모체혈청단백질검사 등 가능한 모든 검사를 한 후 이상이 없다고 진단하였다.

그런데 정작 둘째 아이는 다운증후군의 기형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부모는 둘째 아이가 다운증후군임을 알았더라면 낙태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또 의사의 오진으로 인해 산모의 낙태결정권이 침해되었고, 둘째아이는 출생하지 않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갖고 출생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의사를 상대로 둘째 아이의 향후 치료비와 양육비를 요구하는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우리 형법은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모자보건법이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의 경우에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다운증후군은 유전성질환이 아니므로 인공임신중절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태아의 다운증후군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산모가 낙태할 법적 권한은 없는 것이다.

또한 인간생명의 존엄과 그 가치의 무한함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우리 헌법상 어떠한 인간 또는 인간이 되려고 하는 자도 다른 사람에 의해 출생이 거부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다른 사람에 대해 자신의 출산을 막아 줄 것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비록 의사의 오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부모와 아이의 어떠한 권리도 침해된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법원이 부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기혼여성의 낙태원인 중 기형과 관련한 낙태 수치는 10%를 넘고 선천적 기형으로 진단되거나 의심된다면 낙태를 고려하겠다는 임신부들의 응답이 무려 80%에 이른다.

그러나 선천적 기형을 가진 채 태어날 아이들도 존엄한 존재임은 틀림이 없다.

어쩌면 이들은 약물과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병든 우리사회의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더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이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심각히 고민하여야 할 때가 아닐까.

임규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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