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자 출신 목사의 나무와 흙과 나눈 이야기
한국 노동운동사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 인물 조화순(72'여)씨. 1976년 알몸으로 똥물을 뒤집어 쓴 채 회사와 공권력에 저항한 인천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끈 주역이자 우리나라 아홉번째 여성 목사다.
1970~80년대 한국 노동운동의 대모(大母)였던 조 목사는 1996년 13년간 목회했던 경기도 시흥시 달월교회를 나와 강원도 평창군 봉평 태기산으로 홀연히 떠났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 배경이 됐던 이효석의 고향인 태기산 750m 고지에 혼자 흙집을 짓고 유기농을 하며 터를 잡았다.
해 뜨는 시간에 일어나 노을이 빨갛게 물드는 저녘이면 하루를 마감하는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산지 10년. 조 목사는 도시의 때를 벗고 자연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책은 목회자이자 노동자의 어머니에서 자연의 딸로 거듭난 조 목사가 산에 살며 나무와 흙과 나눈 생명일기다.
조 목사는 목회 일을 그만 두고 산골로 들어간 이유에 대해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땅의 문제이고 환경의 문제이고 생명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 농촌에 가서 농사를 짓자.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먹을거리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생명 평등을 이야기 해야겠다. 나는 농촌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어릴적 내 꿈이기도 했다." 심훈의 '상록수'를 읽고 여주인공 채영신처럼 살고 싶었다는 조 목사는 결국 꿈을 가꾸기 위해 전원으로 돌아갔다.
조 목사는 이 책을 통해 꾸밈없는 담백한 문체로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찬양하고 있다. 잡초로 여긴 돼지감자를 뽑으려다 꽃이 너무 예뻐 돼지감자 주변을 솎아 주었더니 돼지감자의 생명력이 너무 강해서 주변의 잡초들이 힘을 못쓰는 모습을 발견하고 세상의 악을 놓고 악을 제거하는 일에만 노력할 것이 아니라 선을 모아 연대하면 악이 힘을 못쓰게 되는 연대를 배웠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 태기산 자락에 와서 농사와 생명 외에 관심을 가진 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미국에서 열린 한 기독교 성만찬예식 행사에 초청 받아 갔을때 까만 드레스를 입은 수십명의 목사들이 춤으로 예수의 표현하는 감동을 접하고 춤이 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 무용가 홍신자씨를 만나 몇 번 지도를 받은 조 목사는 춤을 통해서 진정한 자기를 알게 되고 또 다른 정신세계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책 중반부에서는 여성 노동자들과 부대끼며 살았던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당시 너무 과격하다고 자신을 비난했던 사람들에게 "여공들에게 똥물을 뒤집어 씌우고 항의하는 여공들의 머리채를 개 끌듯이 끌고 가는 그 참혹한 현장을 봤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며 반문하고 있다.
조 목사는 사무엘 울만의 시를 빌어 청춘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이라고 강조한다. 칠순을 넘은 조 목사에게 인생을 마무리 할 시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조 목사는 언제나 청춘인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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