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덫, 자기 걸려"…'불법도청' 재구성

입력 2005-02-18 11:22:17

이정일 의원(현 민주당 사무총장)이 지난 총선 때 해남·진도 지역구에서 유력 상대 후보 진영을 도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 결과 이 의원과 부인, 언론사 사장, 지방의원, 이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 간부, 운전기사 등이 모의 단계에서 관여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지만 확실한 범죄 혐의 입증은 이 의원 부부가 검찰에 출두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의원은 18일 오전 10시까지 출두하라는 검찰 통보에 대해 그날 국회 상임위원회가 열려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해와 검찰은 19일 오전까지 나오도록 2차 소환 통보를 했다. 검찰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범죄 구성을 재현해본다.

◇2004년 3월 중순 이후 선거운동 상황

탄핵 정국으로 민주당의 인기가 급락하면서 이 지역에서 지명도가 뛰어났던 이 후보는 민주당의 마지막 보루중 하나였다. 그러나 판세가 백중지세로 치닫자 위기감을 느낀 선거대책본부 관계자들은 상대 후보의 불법 선거운동 사례 수집에 나섰다.

◇도청 모의

이 의원 진영의 실질적인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해남군의회 김모(62)의원은 2004년 3월 하순 선거대책본부 핵심 참모였던 자금 담당 문모(43·이 의원의 대주주 회사 총무부장)씨, 비서이자 운전기사였던 김모(48)씨와 논의하고 국내 최고 기술을 가진 심부름센터를 찾아 도청을 하도록 결정했다. 이 과정에 이 의원의 사촌매형이면서 전남지역 언론사 사장으로 있던 임모(63)씨가 개입했다. 임 사장은 자금 동원 부분에도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또 이 의원 부부도 중심부에서 움직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심부름센터 동원

심부름센터와 접촉한 사람은 이 의원의 운전기사이자 비서였던 김모(48)씨였다. 수소문을 통해 국내 최대의 심부름센터인 ㅎ 기획 김모 대표와 접촉한 김씨는 착수금, 중도금, 잔금으로 나눠 500만 원씩 총 1천500만 원에 도청을 하기로 합의했다.2004년 4월1일 서울에서 김 대표 및 도청 전문가 등 6명을 데리고 전남 해남으로 내려온 김씨는 상대후보 선거대책본부장인 홍모 해남군의회 의원 집을 수차례 사전 답사했다. 심부름센터 김 대표는 전도사로 가장하고 들어가 집안 구조를 세밀히 파악하기도 했다.

직원들은 3일 뒤 집안이 빈 틈을 이용해 거실 회전의자 밑에 도청기 송신기를 부착하고 집 근처에서 4일간 선거운동원들의 대화 내용을 녹음해 김씨에게 전달했다.

◇자금 전달

해남군의회 김 의원은 김씨로부터 도청자금이 2천만 원이란 말을 듣고 자금을 담당하던 문씨에게 돈을 전달할 것을 지시했다. 문씨는 며칠 뒤인 2004년 3월 31일 김씨의 부인인 노모씨 계좌에 2천만 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김씨로부터 심부름센터에 건네진 돈은 당초 약속된 돈보다 400만 원이 적은 1천100만 원이었다. 이는 선거캠프에서 나간 돈의 거의 절반 수준으로 '배달사고'가 난 것이다. 검찰은 나머지 돈의 행방도 찾고 있다.

◇검찰 수사

심부름센터 수사를 하던 중 우연찮게 현역 국회의원의 불법 도청이란 대어를 낚은 검찰은 이 의원이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에 수사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언론사 사장으로 이 의원의 인척인 임씨가 도청을 처음부터 주도했는지도 검찰이 밝혀야 할 과제다. 또 문씨가 지급한 자금을 누가 제공했는지는 검찰이 반드시 알아내야 할 사안이다. 통상 지급한 계좌를 추적하면 금방 드러날 수 있는 사안인데 아직 검찰은 이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문씨가 자신의 돈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

◇적용 죄목

이미 3명이 구속됐으며 이 의원 부부나 임씨에게 검찰이 적용시키고자 하는 죄목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이 법은 누구든지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 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 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을 위반하면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는 비교적 무거운 형벌이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검찰은 통신비밀보호법에만 주력할 뿐 도청내용을 활용했거나 불법선거자금을 사용한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이 너무 소극적이지 않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최정암기자 jeong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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