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런 아내 싫다

입력 2005-02-07 10:01:09

남편들도 할 말이 많다. 명절이 '여자만 죽도록 일하는 날'이라면 남편들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노릇. 행여 명절 뒤끝이 좋지 않으면 고부갈등과 부부다툼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원인과 양상은 달라도 명절을 맞는 남편들도 이런저런 고민과 부담을 짊어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시집식구 험담형

"시댁에 갔다오면 한동안 말을 안 하지요". 결혼 10년째인 최모(42·대구시 수성구 시지동)씨는 언제부터인가 '명절불화'가 한번은 치러야 하는 홍역 같은 고민거리가 되 버렸다. 아내는 보통 명절 1주일 전부터 찬바람이 휙휙 불면서 짜증의 상승곡선을 그린다. 명절날에는 급기야 시집에 가기 싫다며 툴툴대기 일쑤여서 억장이 무너진다는 것.

최씨는 어머니와 형수 등 본가식구들을 조목조목 비난하는 아내를 언제고 다독여야 하는 입장. 명절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신혼 초부터 어머니와 감정의 골이 깊이 팬 것 같아요. 그 땐 별 것 아니라 생각했었는데, 이제 중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전문직에 종사하는 아내가 슬기롭게 극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감추지 않는 최씨는 "그러나 어쩌겠어요. 어머니 기력도 자꾸 쇠진해지는데 달래고 달래서 명절에도 웃는 날이 오도록 내가 힘쓸 수밖에 없다"며 희미하게 웃는다.

△신세한탄형

명절 때 유독 듣기 싫은 소리중의 하나가 신세타령이다. 대부분 시집과의 갈등과 못미더운 남편타박에서 시작되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남편도 고민이 많아진다.

이모(43·대구시 북구 관음동)씨의 경우도 그렇다. "대구를 출발하면서부터 명절이 싫다 싫어 노래를 부르는데 본가에 가면 입이 댓자로 나옵니다". 본가에 가서도 늘어지는 신세타령에 자신도 차마 정이 뚝뚝 떨어진다는 내색을 표현하고 만다는 것.

이씨는 아내가 명절 때마다 마음고생, 몸 고생에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결국 마음의 상처를 서로 주고받는 셈이라고 멋쩍어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아내가 역지사지의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쪽이 불행하다고 느끼면 다른 한쪽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이씨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두 집안 비교형

인터넷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김모(38·대구시 달서구 장기동)씨. 그는 "명절을 앞두고 치를 떠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고 한다. 몇년 전 명절 때 "일년에 딱 두 번인데 그때만 시집살이하자"는 말을 아내에게 했다가 돌아온 말은 "당신 집은 왜 그 모양이야"는 비난이었다. 그때 참아서야 했을까. 그러나 김씨는 결국 언성을 높이고 말았고, 결국 아내와 크게 싸웠다.

김씨는 "입장을 바꿔 남편이 아내에게 너희 집안은 왜 그러냐, 장인어른 찾아뵙기도 싫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상처가 되겠느냐"며 "부모와 아내 사이에서 눈치를 살펴야 할 처지인 자신이 명절 때마다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간의 불평등한 집안관행, 그 사이에 끼여 아내의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남편들. 그러나 대다수 남편들은 '명절 전쟁'을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한 것 같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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