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헐고 차라리 인삼밭으로"
"재고물량은 쌓여가고 경기불황은 끝이 안 보이니 살길이 막막합니다.
"
곳곳에 버려진 기계, 굳게 닫힌 공장문, 인적 없는 거리, 인삼밭으로 변한 공장부지….
설을 앞둔 영주시 풍기 인근의 봉현면 오현리 농공단지와 바로 옆 대촌리 지방산업단지에 입주한 직물업체들은 요즘 하루하루 견디기가 힘겹다.
1980, 90년대 지역경기의 버팀목으로 자리했던 직물산업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
1930년 명주공장을 시작으로 이들 단지엔 한때 150개가 넘는 인견직 생산공장들이 들어섰다.
연간 1억5천만 야드의 인견직과 폴리에스테르, 나일론을 생산해 국내외 시장에 판매해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곳에 입주한 직물업체들이 줄도산을 하는 등 휴·폐업이 속출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2000년 154개 업체에 1천200여 명이 근무하던 이곳 단지의 입주업체는 2003년 62개로 절반 이상 줄어든 데 이어 지난해에는 14개 업체가 무더기로 폐업, 현재 40개 업체에 종업원 529명이 종사하고 있다.
이들 업체마저도 가동률은 50%에도 못 미치고 있고 공장마다 생산물량의 50%는 그대로 쌓여 업체마다 재고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풍기직물공업협동조합 길왈현(48) 부장은 "자고 나면 조업중단에다 휴·폐업으로 공장 문을 닫는 회사가 한둘이 아니다"고 전했다.
40년간 직물공장을 운영했던 김상수(72)씨는 "80·90년대만 해도 풍기에서 인견직 공장을 하는 사람은 나름대로 유지 소리 들어가며 살았다"면서 "휴일이면 공장에 근무하는 사람과 거래처 사람들로 도시가 만원이었는데 요즘은 기계화로 종업원도 줄고 중국산이다 뭐다 해서 수출도 안 되고 공장 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최근 부도로 공장문을 닫은 김모(48)씨는 "그나마 규모가 큰 회사는 수출 물량 때문에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지만 대부분이 영세업체인 공장들은 재고물량을 줄이기 위해 기계를 세우고 생산량을 줄여 긴축 운영하지만 자금압박에 시달려 견디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한숨 쉬었다.
게다가 이들 업체들은 국내 봉제산업기반이 대부분 인건비가 싼 중국과 베트남 등으로 옮겨 가면서 OEM방식을 통해 옷을 생산하는 바람에 국내 수요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어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게다가 중국이 성능 좋은 일본 수입기계로 중무장하고 세계시장에 뛰어들면서 국내 영세업체들의 입장은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
풍기직물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정부가 섬유산업 발전을 위해 연구개발에 집중하지만 영세업체들은 생산시설이 낙후돼 뛰어난 제품을 생산해 내지 못 한다"고 지적하면서 "연구개발 중심의 사업을 생산기반시설 확충으로 전환해야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풍기 섬유업계의 사정이 이렇게 악화하자 영주시 등 관련기관들이 지역 기반산업 살리기에 팔을 걷고 나서고 있지만 옛 명성을 찾기엔 역부족.
시는 풍기직물조합과 함께 2001년부터 패션축제를 열고 섬유생산 구조를 직물류 위주에서 디자인·패션산업 중심으로 바꿔 창의적인 지식집약 산업으로 육성하는 사업을 추진해 왔다.
시는 또한 섬유제품 수출회사와 연계한 수출시장 확보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나 패션축제는 재정난으로 2003년 이후 중단된 상황.
영주시 김승희 공업담당은 "지역 섬유업체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은 원단가격은 크게 내리는데 비해 일본 등지에서 수입하는 원사가격은 30% 이상 올라 수출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며 "내수경기와 수출 경기가 되살아나지 않을 경우 지역 경제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영주지역에서는 이들 공업단지를 포함한 60여 개 직물업체들이 연간 5천900만 야드의 화학섬유와 인견직을 생산, 5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영주·마경대기자 kdm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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