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쫓겨나 축사에서 창업 일궈"

입력 2005-02-02 11:51:04

'자수성가''7전8기' 성공 사례들

제조업 현장에서 자수성가(自手成家)형 기업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제조업을 기피하는 경향에다 뭔가에 도전하는 풍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설사 도전한다 해도 절대 다수가 서비스업 쪽이다.

7전8기의 오뚝이 성공실화도 좀처럼 들을 수 없다. 어려우면 단숨에 접어버린다.

지난달 중소기업청 주최 창업성공 및 실패사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강성진(43) (주)월드솔루션(경주시 외동읍) 대표. 그의 이야기는 책속에 묻혀있던 '자수성가'와 '혁신', '7전8기' 등의 용어를 일터 사람들에게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발상의 전환, 자동차 지붕 위의 텐트

강 대표가 경영하는 월드솔루션. 범퍼, 콘솔박스 등 자동차용 플라스틱 부품을 주로 생산한다. 공장 규모는 5천여 평, 지난해 매출은 400여억 원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차부품 회사.

하지만 강 대표는 지난해 다른 차부품 회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독특한 신수종을 개발, 회사 연간 매출을 일시에 10%나 더 키웠다. 자동차 지붕에 얹는 '텐트(제품명:카펜션)'를 개발, 상용화에 성공한 것이다.

"2000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가봤더니 미국에서는 캠핑카가 부의 상징이더군요. 우리도 주5일제로 간다는데 이에 맞는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국토가 좁은 우리 실정에는 캠핑카가 맞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고민끝에 '차위에 텐트를 올려보자'고 생각했죠. 완성차 업체에만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아이템도 필요했고요."

주변에서는 '안된다'고 야단이었다. 그러나 강 대표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최소 3명은 차 위에 올라가 잘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충분하니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차 지붕은 차가 뒤집어져도 눌리지 않을 정도의 강도를 갖고 있어 기술적 어려움도 없다고 봤다.

"있는 설비를 이용해야 승부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회사는 이미 범퍼생산용 사출기가 있었으니 카펜션을 제작하는데 설비신설이 필요 없었죠."

카펜션은 2003년 하반기 부산 모터쇼에 첫선을 보였다. 나오자마자 판매는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국내시장에서 40여억 원, 해외시장에서 7억여 원 어치를 팔았다. 독일·덴마크 등에 이미 수출 중이고 영국·대만·아랍에미레트 등에서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CEO는 항상 '내일'을 미리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직원들이 곧 300여 명으로 불어나는데 이 사람들에게 미래를 보여줄 수 있어야죠." 그는 연비개선을 위한 자동차 초경량화에 대비, 새로운 소재를 개발 중이라고 했다.

◇축사에서 일군 기업

강 대표는 1990년 울산시 외곽의 한 축사를 월 50만 원에 빌려 제조업을 시작했다. 경차 티코 해가리개에 들어가는 스펀지 생산. 다니던 울산의 차부품업체에서 윗사람과의 마찰로 '쫓겨난' 직후였다.

"그달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났죠. 생활비를 빌리려고 알고 지내던 거래회사 간부사원을 만났는데 '회사에서 하던 일을 당신이 직접 해보라'는 거예요. 그리고 스펀지 찍는 기계 살 돈 2천만 원까지 꿔 주시더군요. 눈물이 납디다. 나를 이렇게 믿어주는가 생각되더군요. 그 분의 믿음에 뭔가 보답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직원도 없는 회사. 강 대표는 혼자 축사에서 제조업을 꾸려나갔다. 밤새 만들고 낮에는 납품처에 물건을 실어날랐다. 잠잘 시간이 없었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아끼기 위해 국도로 다니는 강행군까지 이어졌다.

1996년 맨손으로 시작한 그의 회사는 창업 6년 만에 근로자 60명, 자본금 16억 원인 법인으로 자랐고 2001년엔 부도난 차부품업체 한 곳까지 인수했다.

"시련요? 외환위기 이후 엄청나게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12건, 21억 원의 어음부도를 맞았습니다. 대구의 삼성상용차에서도 7억 원을 못받았습니다. 하지만 접을 수 없었습니다. 공정을 새롭게 하고, 작은 아이디어에서 특허를 도출해내는 등 끊임없이 탈출구를 찾았습니다."

경산이 고향인 그는 13세 때 부모를 모두 여의었다. 쌀 배달을 하며 대구 한 고교를 다녔고, 학비가 없어 중퇴한 뒤에는 목욕탕 종업원, 구두닦이, 택시운전사 등 안해본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출발선에서 앞을 보면 결승선이 멀어 보입니다. 축사에서 혼자 기계를 돌릴 때 저도 앞이 암담했습니다. 하지만 끈기를 갖고 달리니 결승선이 어느덧 가까워져 있었습니다. 2010년까지 매출 1천억 원이 목표입니다. 새로운 결승선을 향해 직원들과 함께 뛰겠습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