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사마가 일본인을 바꾸고 있어요"

입력 2004-12-27 12:06:41

최미화가 만난 사람-오사와 츠토무 일본 공사

"배용준 달력 꼭 좀 구해주세요. 연초에 일본에 가는데 60년 역사를 지닌 모 일본출판사의 사장 부인(70세)이 배용준 달력을 꼭 갖고 싶어해요. 배용준 달력이 없으면 배용준에 관한 뭐라도 괜찮아요. 배용준에 관한 것이면 일본 내에서 최고의 선물입니다. "

닷새 앞으로 다가온 2005년은 일본이 을사조약으로 우리 외교권을 박탈하고 조선을 죽인 지 100년이 되는 해이자 우리 민족이 일제에서 광복된 지 60년, 그리고 한일국교가 정상화된 지 40년 되는 '우정의 해'이기도 해서 한일관계는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이럴 때 '배용준 달력'으로 상징되는 호의적인 관심을 발전시켜 나갈 방법은 뭘까?

◆ 순애, 그리움 그리고 욘사마

과거 한국을 식민지배했고, 파란눈의 미국인에게만 눈을 돌렸던 일본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욘사마 열풍을 보이자 한국에서는 상당히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왜 저렇게까지 배용준에 대해 열광하지"로 되묻기 일쑤인 한국사람들은 일본에서 겨울연가, 욘사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를 잘 모른다.

"욘사마가 공항에 도착할 때 5천명이 넘는 중노년층 여성들이 열광했는데, 저역시 그 정도까지 붐을 일으킬 줄은 몰랐습니다"라는 오사와 츠토무(大澤勉) 일본공사(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는 우선 일본에서 배용준 최지우가 주인공을 맡았던 겨울연가의 인기비결을 순애 그리움 그리고 욘사마 세가지 요소로 압축한다. 90년대 '도쿄의 러브스토리' 라는 드라마 외에는 순애보를 다룬 일본 내 드라마가 없었고, 겨울연가가 그리움 내지 추억이라는 순수함을 지닌 데다 '32세의 한국청년 ' 배용준이 내뿜는 섬세함과 부드러움에 매료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가족애라는 한국적인 문화에 매료

일본사회를 친한(親韓) 분위기로 대번에 반전시킨 계기를 만든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여성들의 심금을 울린 것은 다름 아닌 가족애이다.

"일본 현대사회에서 부모가 반대한다고 결혼하지 않는 법은 없어요. 그냥 부모 품을 떠나 결혼을 강행해요. 그러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한국문화는 달랐거든요. "

부모반대로 연인이 헤어지는 시추에이션은 일본문화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싫어했던 사람들이 아! 한국은 이런 나라구나라고 깨달으면서 친밀감을 느껴요."

◆ 역사 이래 세번째 한국에 대한 호의

사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호의적 관심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원 전후 국가 형성기에 일본에 건너가서 지배층을 형성한 도래인(渡來人), 중세 조선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던 조선통신사, 그리고 이번 욘사마 열풍까지 크게 세번 정도 한국을 배우고 알려고 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일본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부쩍 늘었습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구요. 송승헌 때문에 한국의 징병제까지 알게 됐지요. "

근년 들어 NHK가 개설한 한국어 강좌의 교재판매가 급증하고, 각 지방자치단체의 한글교실은 순식간에 정원이 차버린다. 종전에는 양국간 젊은이 교류도 편견을 지닌 중년층 때문에 쉽지 않았으나 지금의 한류열풍은 중년층이 그 진원지이다.

"겨울연가도 처음에는 어머니들이 보다가 아들딸이 보게 됐고, 모녀가 같이 겨울연가 촬영지인 남이섬을 동반관광하는 경우까지 생겼습니다. "욘사마 붐이 일본 중년층의 한국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NHK 연말 황금시간대 겨울연가 4번째 집중 편성

"NHK가 지난 12월 20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연말 황금시간대에 '겨울연가'를 네번째 방영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국어로 말입니다. 평일에는 2회, 주말에는 1회씩 집중편성했습니다."

한국문화와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겨울연가를 한국어로 방영해달라는 요구가 잇따랐다.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여론조사 결과 일본인의 56.7%가 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유는 한국영화, 드라마, 한일월드컵 공동개최, 한국요리(비빔밥, 떡국, 불고기, 김치 등), 한국가요 등의 영향이다.

◆ 전략적인 접근 필요한 시점

근대화 이후 한일 양 나라는 '왜놈'과 '조센징'으로 서로 경멸하며, 반일(反日)과 혐한(嫌韓) 기류에 얽매여왔다. 피해자인 우리의 반일은 그렇다치고, 가해자인 일본도 한국을 혐오했다.

이제 그 기류가 바뀌어 윈윈할 수 있을까. 유사 이래 500년 만에 섬에서 한반도로 불어오는 훈풍. 23억 달러(2조4천억 원)의 경제적 효과를 지닌다는 욘사마의 인기를 포함한 한류열풍이 일시적이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2005년 한일국교 수립 40주년을 맞아 적어도 100여 건 이상의 문화교류가 예정돼 있는 가운데, 현해탄을 넘나드는 한류열풍이 한국문화를 알리는 계기가 되려면 시민사회와 지식인의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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