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당쟁(黨爭)을 연구한 일제 관학자들은 우리의 '당파성'이 나라를 망쳤다고 매도했다. 대한제국의 학정참여관 시데하라 히로시는 '조선정쟁지(朝鮮政爭志)'를 통해 '당쟁은 조선 정치의 특징'이라고 규정해 분노를 샀다. 우리로서는 식민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한 '궤변'이나 '역설'로 치부할 만큼 싫은 지적이었다. 이 때문에 이광수나 최남선이 동족을 비하하는 글을 쓴 것을 친일파의 상투적 수법으로 치부하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 폄훼의 시각들이 새삼 우리를 아프게 하는 건 '왜'일까?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의 당쟁은 '기호'와 '영남'으로 갈리었다. 하지만 당시 율곡과 우계 사이의 '율우논변(栗牛論辨)'이나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예송논쟁(禮訟論爭)' 등은 본질은 권력싸움일 경우라도 명분은 학구적 논쟁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정쟁은 명분과 실익, 민생마저 뒷전으로 밀려나 조선시대보다도 못한 감이 없지 않은가.
◎…주간지 '교수신문'이 올 한해를 표현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로 '같은 무리와는 당을 만들고 다른 자를 공격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당동벌이(黨同伐異)'를 뽑아 곧바로 회자(膾炙)되고 있는 것 같다. 대학 교육 전문지인 이 신문이 자체 필진과 주요 일간지에 칼럼을 쓰는 교수 등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19.8%가 이 성어를 꼽았다니 기가 찬다.
◎…우리나라가 분파주의·당파주의 등으로 당쟁이 극심했던 조선시대에 회자되던 이 시대 비판적인 용어가 오랜 세월 뒤에 되살아났다는 점에서 안타깝고 답답하기 그지없다. 중국 '후한서(後漢書)'의 '당고열전(黨錮列傳)' 머리말에 등장하는 이 말은 한(漢)나라와 후한(後漢)이 저물어갈 때 정치가·학자들 사이에 이런 망국적 풍조가 만연해 결국 나라가 무너지게 됐다는 데 그 뿌리가 있어 우리 현실이 실로 우려된다.
◎…일제 관학자들의 우리 폄훼는 진정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부끄러움이 겹쳐 다가오기도 한다. 요즘 정치인들은 국가의 이익이나 국민의 복리는 버려 둔 채 당리·당략에만 매달려 싸움하고 있다면 지나치다고 말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과거제도가 그랬듯이, 조선시대엔 적어도 도덕적 수양은 돼 있어야 정치가가 될 수 있었다. 정치인들은 이제 수신(修身)부터 해야 하지 않을는지….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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