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학습을 한 후에 어느 정도로 이해하거나 숙지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시험이나 테스트와 같은 평가다. 당연히 교육과 학습이 평가보다 앞선 위치에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다르다. 학습이나 교육보다 평가가 우선 순위에 있다. 평가 결과가 좋으면 과정도 무시되기 일쑤다. 평가 내용과 방법에 따라 학습할 내용과 방법도 좌우된다. 영어 교육에서도 이런 현상은 그대로 나타나는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례-'I'm sorry.'와 'I'm sory.'
올해 초 어느 학부모로부터 한 통의 e-mail을 받았다. 대학원까지 나오고도 영어 한마디 못하는 현실이 서글퍼서 내 자식만큼은 힘들더라도 어릴 때부터 시작하도록 했다며 편지의 서두를 열었다. 유치부 1년과 초등부 2년을 공부했으니 큰 기대를 갖고 초등학교 3학년 영어책을 읽히고 받아쓰기를 시켜 보았는데, 그 결과를 보고는 앞이 깜깜했다고 했다. 'I'm sorry.'를 'I'm sory.'로, 'What's this?'를 'Whot's this?'로 적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듣기와 말하기에 중점을 둔 영어 학습을 해 온 학생을 받아쓰기 하나로 평가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sory나 whot은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이나 영국 아이들도 쉽게 범하는 철자 쓰기의 실수나 오류와 같은 것이다. '읽고 쓰는 글(Written Language)'에 대한 학습보다 '듣고 말하는 말(Oral Language)'에 대한 선행 학습이 이루어져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실-유창성보다는 정확성을
학부모들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10년이나 영어 공부를 했는데 영어 한 마디 하기가 힘든 이유를 생각해 보자. 공부를 소홀히 하였거나 머리가 나빠서 생긴 문제는 아니다. 밤늦도록 공부하고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보충'심화학습을 해서 좋은 성적을 받기도 했는데 말 한 마디 하기는 왜 그렇게 힘든 것일까.
원인은 영어 시험의 내용과 방법에 있다. 단어의 뜻이나 철자를 적고,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긍정문을 부정문으로 능동태를 수동태로 바꾸는 등 문법 지식을 묻는 평가만을 통해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0년이 아니라 1, 2년 정도라도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다양한 구두시험(Spoken Test)-질문과 답하기(Question and Answer), 그림 묘사하기(Describing Pictures), 인터뷰하기(Interview), 발표하기(Oral Report) 등과 같은 시험을 치렀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현재 학교 영어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초등학교에서는 '유창성(Fluency)'을 강조하여 듣고 말하는 회화 영어, 중학교에서는 '정확성(Accuracy)'에 초점을 두고 문장의 원리를 파악하는 문법 영어, 고등학교에서는 '글 읽는 방법'을 터득하여 폭 넓은 지식 습득을 돕는 독해 영어를 중점적으로 학습한다. 그러나 실제로 각 단계간의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학습되지 않는다. 중학교에서는 내신 성적을 위한 문법학습과 평가를 하고, 고등학교에서는 수능을 대비하는 독해 학습과 평가에 치중한다. 이러한 비균형적인 교육으로는 말 한마디 하기도 정말 힘들다.
◇방법-다양한 각도로 활용하기
지난 회에서 구(Phrase)나 절(Clause) 단위의 덩어리 개념을 도입하여 정상적인 말하기 속도로 말하기와 읽기 학습을 하자고 했다. 이번에는 토론식 영어에서의 문법, 독해와 관련된 학습법에 대해 알아보자.
i) 문법 학습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005년 9월부터 바뀌는 TOEFL에 문법 문제가 출제되지 않는다고 문법을 학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문법만을 묻는 단순한 질문만 없어질 뿐, 더욱 통합적이고 복잡 미묘하게 문법의 쓰임새를 측정할 것이다. 말을 하면서, 글을 쓰면서 문법적인 오류가 없는지 복잡하고 다양한 문장 구조로 구성된 장문을 읽을 때 평가한다. 더욱이 문법은 언어의 뼈대와 같아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ii) 문법 규칙을 수학 공식처럼 외우기보다는 그 활용에 치중해야 한다. 자동차 부품 명칭과 도로 운전법을 안다고 해서 차를 운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전면허를 땄다고 처음부터 능숙하게 운전을 하는 사람은 없다. 운전 솜씨가 뛰어나려면 운전을 많이 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처럼 말하면서 문법을 통합적으로 활용하고, 글을 많이 써 보거나 글을 많이 읽으면서 문법의 활용도를 높여서 문법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때까지 연습한다. 말은 기다리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문법을 생각하고 판단을 해야 한다.
iii) 복합적인 분석(Analysis)보다는 감(Feeling)이 중요하다. 영어를 공부하는 모든 사람이 영어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의 분석력과 실력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문법적으로 오류가 없는 영어식 표현을 매우 많이 읽고 듣고 말하여 영어의 감을 갖도록 한다.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이러한 표현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 같아'라는 식의 말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iv) 영어의 문장을 통째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인들의 말하는 속도는 1분당 평균 160~180단어이다. 영어 문장을 듣고 이해하려면 1분당 최소 160개 이상의 단어를 읽어내야 한다. 말하는 속도만큼 영어 문장을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러한 속도에서는 주어, 동사, 목적어 그리고 관계대명사의 선행사가 무엇인지를 일일이 찾아가면서 우리말로 해석을 할 수도 없다. 영어식 표현과 사고가 머리 속에 자리 잡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문장을 몇 개의 구(Phrase)단위 덩어리로 나눌 것이 아니라 문장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정원철 (앤도버 스쿨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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