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감마마 커닝'으로는 진다

입력 2004-12-13 15:09:00

TV 드라마에 출연한 어느 탤런트가 대사(臺詞)를 커닝하려다 낭패 본 에피소드 한토막….

탤런트 L씨의 드라마 배역은 임금에게 적군의 공격 정보를 황급히 아뢰려고 내전에 뛰어드는 장군역(役)이었는데 전투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이라 맡은 대사가 꽤나 길었었다.긴 대사를 외우기가 힘들고 귀찮아진 탤런트 L씨, 커닝을 하기로 꾀를 부렸다.

임금 앞에 뛰어들어와 엎드려 대사를 외우는 위치에 깨알같이 대사를 써놓은 것이다.엎드린 얼굴이 화면에 비칠일도 없으니 누가 커닝 하는줄 알겠느냐며 여유만만 마룻바닥에다 "상감마마! 지금 성밖 삼십리 밖에 적의 3만 대군이 병마를 이끌고…" 예닐곱줄을 줄줄이 써두고는 계속 빈둥댔다.

그런데 촬영날 일이 터졌다.

임금 옥좌앞 정해진 마룻바닥에 뛰어와 엎드린 L씨, "상감마마!"까지 외치고는 다음 대사가 탁 막혔다.

바닥위에 써뒀던 커닝 대사가 사라진 것이다. 위치가 잘못됐나 싶어 이리가 엎드리고 저리가 엎드리면서 "상감마마" "상감마마!"하고 둘러봤지만 바닥 어디에도 그 다음 "성밖 삼십리…" 대사는 보이지 않았다. 무심한 청소 아줌마가 녹화 전날 밤 알뜰살뜰 바닥 청소를 해버렸던 것이다.

커닝이란게 나이어린 학생들뿐 아니라 잘 나가는 중견 탤런트 아저씨도 염치불구 유혹 당할때가 있는 마수 같은 것이라 치더라도 인터넷 세대가 치른 수능 입시에서 '휴대전화 커닝'까지 등장한 것은 2세 교육의 병든 모습을 보는 가슴 답답한 사건이었다. 전자통신정보 분야 교수 한분은 미래의 디지털 문화가 앞으로 더욱 첨단화된 21세기형 커닝 수법을 계속 등장시킬 것이라는 기술문명비판론까지 내놓기도 했다.

카메라폰으로 답안지를 촬영한 뒤 친구에게 전송시키는 방식이나 MP3에 수학 공식이나 단어 등을 녹음 해둔 뒤 응용하는 인터넷 시대의 디지털 커닝 방식은 마룻바닥에 대사를 써두는 아날로그식 커닝세대를 저만치 뛰어넘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커닝 파문을 놓고 고작 '첨단기기를 이용한 부정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기술적 방안들을 다각적으로 강구하겠다'는 담화문 발표나 하고 있다.

지금 우리 고등학교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는 커닝 수법의 진화나 그에 대한 방지대책 따위에 있지 않다.

수험생이나 교육당국이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세계의 교육현장이 얼마나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가를 직시하는 일이다.

전세계 대학중 상위급 최고 수준의 명문 대학들이 수두룩한 미국의 경우 지금까지 평준화 스타일의 교육 결과 대학입학 후 대학수업을 들을 수 있는 학력도 제대로 안된다는 비판을 받아오던 고교생들에게 이제 엄청난 자극과 변화를 가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공부 안하면 졸업장도 못받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부시 정부가 미국 전역의 고교생 학력수준을 높이기 위한 개혁정책으로 교육개혁입법인 'NCLB'(No Child Left Behind=뒤처지는 학생은 없다)는 법을 도입하면서다.

이 법에 의해 고교졸업예정자는 SOL(표준학력고사)를 치러야 한다. 최근 3, 4년사이 뉴욕'조지아'텍사스 등 20여개주가 SOL제도를 채택했다. 떨어지면 대학입학은 커녕 고교졸업장도 못받고 취업도 어려워진다.SOL시험은 장난이 아니다. 명문고가 많은 버지니아주에서만도 22%가량이 1차 불합격됐을 정도 수준이다.

부시정부가 왜 갑자기 고교교육을 강화시키는가. '미국을 끌고가는 힘은 교육에서 나오며 고교생들의 질높은 학력수준은 이를 위한 첫출발이다'는게 이 정책의 논리다.사교육이 생겨나고 빈곤층과 소수인종 학생들의 낙오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부정적 반론같은 것은 '고교때 배운 지식을 대학과 사회로 연결시키는 노력에 반대하는 것 자체가 교육을 포기하겠다는 발상'이라는 여론에 묻히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잘난 입씨름 대신 정신 없이 치열하게 앞으로만 가고 있는것이다. 그들에게 "한가지만 잘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다"는 따위의 말장난 같은건 코미디같은 헛소리다. 이미 일본은 그런 미국땅에 12년전부터 사설교육기관을 진출시켜 '독해센터'같은 학원은 지난한해 수강생만 12만명을 끌어모아 달러를 벌고 있다. 강대국들조차 그렇게 변해가는데 휴대전화 커닝에 커닝방지기술개발, 사학법개정, 평준화유지, 교실안의 이념교육, 무더기 1등급주기 따위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우리 교육도 강하게 변해야한다. 안그러면 진다. 세계화시대, 국제경쟁의 무대위에서 땅바닥에 '상감마마'나 써놓고 빈둥댈 배짱이라면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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