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개천 사이 2도3군 '한마을 이웃'

입력 2004-12-11 11:10:02

'경북 도계지역' 그곳에선…상주 입석리·문경 농암-충북 괴산 삼송리

청화산과 백악산, 조황산을 병풍삼아 경북과 충청 2도(道) 3군(郡)이 맞닿은 경북도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접경마을. 이 곳에는 입석리를 비롯해 경북도 문경시 농암면과 충북도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주민들이 오순도순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행정구역이 엄연히 다르지만 그들은 한 마을 이웃으로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다른 접경지에서 불거지고 있는 개발갈등과 주민들 간의 사소한 시비거리는 이들에겐 딴 세상 얘기다. 한 여름이면 경북도 주민들이 충북쪽 마을의 잘 가꾸어진 소나무숲 공원 정자에서 더위를 피한다. 충북 주민들도 대부분 농사일을 경북쪽에서 하면서 지친 심신의 피로를 입석마을 농업인건강관리실에서 푼다.

이뿐만 아니다. 이들은 교회나 진료소 등 여타 시설도 행정구역과는 상관없이 서로 왕래하며 이용한다. 학생들도 도를 넘나들며 학교를 다닌다. 오늘은 경북도민이었다 내일이면 충북도민이 되는 이웃간 이사도 다반사다. '경북도, 충북도'라는 행정구역 명칭은 이들에게 단지 주민등록증 주소 맨앞에 붙는 단어쯤으로만 여긴다.

이같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2도 3군 주민생활 한가운데에는 경북 입석리마을에 들어서 있는 '보건진료소'가 톡톡히 한몫을 해내고 있다. 이 곳 유일한 의료기관이면서 주민들의 정보 공유와 만남의 장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개울을 건너 경북도로 넘어온 충북사람들로 보건진료소가 붐비기 일쑤다.

상주보건소 입석보건진료소 운영협의회 박웅기(63·입석리) 부회장은 "25년 전에 진료소가 생기면서 충북쪽 사람들도 이 곳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며 "경북과 충북으로 갈라져 있지만 여느 마을의 이웃과 마찬가지로 길흉사나 농사일을 서로 도우는 이웃일 뿐"이라 말한다.

입석보건진료소에는 김인숙(50·여)소장이 주민건강을 책임진다. 경북 입석리 150여 가구와 충북 삼송리 50여 가구 등 350여명의 주민들이 이 곳을 이용하고 있다. 김 소장이 관심을 갖고 건강을 돌보는 150여명의 노인환자 관리대상에는 충북 사람들이 50여명이나 포함될 정도로 그들에게 입석보건진료소는 중요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진료소에서 만난 충북의 임태분(58·여·청천면 삼송리)씨는 "피부병이나 감기, 관절 등에 문제가 생기면 진료소를 찾는데 이 곳이 생기기 전에는 차를 타고 10분쯤 충북쪽으로 나가 송면보건지소를 이용하는 불편을 겪었다"며 "개울건너 이 보건진료소가 생기면서 삼송리 주민들이 괴산군에 민원을 넣어 이 곳을 이용하도록 요청했다"고 전했다. 임 씨는 충북 괴산군이 상주시에 보건 진료소 운영비를 줘야한다는 우스갯소리도 했다. 그만큼 지난 25년 간 충북 사람들의 생활 속에 진료소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

김 소장은 "하루 평균 30여명의 진료 환자들 중 충북 삼송리 사람들이 10여명이나 될 정도로 그들에게 이 곳은 중요한 의료기관이 되고 있다"며 "살림살이의 규모나 가정사, 가족들의 병력 등을 모두 알 수 있을 정도로 이젠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때문에 주민들은 "보건소나 보건지소 등 큰 병원보다 진료소 소장님이 지어준 약이 더 잘 맞다"고 자랑한다. 게다가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하는 충북쪽 사람들은 고향에 남은 부모 건강이 걱정되면 밤낮없이 김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할 정도다.

경북사람 신현복(55)씨는 "삼송주민들이 대부분 경북쪽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입석리 건강관리실 이용은 물론 품앗이 등 일손도 경북쪽 사람들과 서로 돕고 있다"며 "같은 마을로 인식하면서 경북과 충북을 오가는 이사도 다반사"라고 한다.

김홍문씨는 4년 전 충북 괴산군 삼송리에서 경북 상주시 입석리로 이사를 했다. 또 김상기씨는 입석에서 삼송으로 이사했다가 또 다시 입석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도를 넘나드는 이사짐이라 해도 리어카와 손으로 개울만 건너면 되는 간단한(?) 일이란다.

김상조(58·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씨는 "10년 전만 해도 삼송리 아이들이 입석초등학교에 다녔다"며 "송면초등학교에서 이 곳 아이들을 안 보내면 폐교위기에 처한다고 해 그 때부터 전학시켰으며 입석초교를 졸업한 경북쪽 아이들도 중학교는 청천이나 괴산중학교로 진학할 정도"라고 말했다.

한여름철이면 경북의 입석리 주민들은 더위를 피해 실개천을 끼고 잘 조성된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소나무숲공원으로 땀을 식히러 간다. 그 곳에서 양쪽 주민들은 서로 안부를 묻는다. 충북사람 박현조(64·청천면 삼송리)씨는 "이 마을 사람들은 입석리나 삼송리 등 행정명칭을 부르지 않고 큰말·양짓말·음짓말·안골 등 옛부터 불러온 자연마을 이름을 사용한다"고 밝힌다. 지역이름에서부터 이웃임을 인정하고 행여나 행정구역이 달라 생길지도 모를 갈등요인을 없애자는 그들의 속내에서 그 곳 사람들은 분명 이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상주·엄재진기자2000jin@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