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채소값 폭락 "갈아엎고 싶어요"

입력 2004-12-04 11:14:08

"에휴~ 이거 차라리 버리는 게 낫지…어디 인건비라도 건지겠나?"

포기 당 500~800원하던 배추가 100원으로 폭락하면서 농가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싼값에라도 내다 팔고 싶지만 전국이 풍작이라 처분하기도 만만찮다. 밭떼기 상인들의 발길도 끊겼다. 김장철을 맞았지만 중국산 수입과 과잉재배에다 풍작으로 값이 폭락, 농민들의 애간장이 타들어 가고 있다.

◇"그냥 가져 가세요"

의성군 봉양면 안평리 안실들. 짓푸른 배추가 한없이 펼쳐져 있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농민들도 수확을 아예 포기한 듯하다.

지난 2일 이상익(50) 이장의 배추밭. 대구 침산교회 무료급식소에서 나온 미니버스와 대구 수성구의 한 사회복지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이 1t 화물차량을 동원, 배추를 수확해 차량에 실었다. 주민 윤원곤(54·의성군 봉양면 안평리)씨는 "이씨의 배추 밭 1천평을 100만원에 밭떼기로 계약한 대구상인이 수확 및 출하 비용 등 운임과 인건비도 건지기 힘든다며 사회단체 등에 배추를 몽땅 기증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형우(70·봉양면 화전3리)씨는 "도대체 수익이 남는 농사가 없다. 특히 올 김장배추는 종자비와 농약·비료값 등을 계산하면 생산비는 고사하고 손실만 더 커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장배추 농사비용이 한 마지기(200평) 당 종자값 5만원, 농약값 15만원, 비료값 3만5천원 등 23만5천원이 들어갔지만 식구들 인건비조차 계산할 수 없다. 이씨는 "배추 농사 1천평을 지어 600평은 90만원에 팔고, 나머지 400평은 처분할 일이 막막하다"고 걱정했다.

◇계약재배 농가들의 피해

청송·영양지역에서도 한 포기 100원에 팔린다. 지난달보다 포기당 무려 600원쯤 떨어졌지만 살 사람조차 없다. 영양군 석보면 지역은 올해 160 농가에서 150ha의 김장채소를 재배, 절반이 넘는 80농가 100여ha는 중간상인들과 계약을 맺었다. 계약배재 농가들은 30%의 선급금을 받았지만 가격폭락으로 중간상인들이 수확을 포기해 나머지 대금을 받을 길이 막막해졌다.

가을배추 3천평을 계약재배한 영양군 수비면 김광규(45)씨는 "중간상인으로부터 2천여만원에 계약, 선급금으로 100만원을 받았으나 최근 중간상인이 수확포기를 통보해 왔다"고 말했다. 이런 피해농가는 영양에만 100여 농가에 이를 것이라고 김씨는 덧붙였다.

◇자구책 마련에 나선 농민들

농민들이 직접 서울 가락동 농산물 시장으로 출하를 시도하고 있다. 김계현(52·영양 석보면)씨는 "5t 한 차에 80만원을 받으면 운반비 40만원, 상차비(인건비) 33만원, 종이대 2만5천원, 경매수수료 8만원, 청소수수료 7만원 등 기본경비만 90만5천원이 들어 오히려 10만5천원을 더 내놓아야 한다"고 한탄했다.

무 1천500평을 경작한 이우학(48·영천시 조교동 장천리)씨는 "지난해 2.5t 1차에 260만원을 받았으나 올해는 42만원을 받았다"면서 "차량운임비 22만원, 상차인건비 17만원, 대구 매천시장 공판수수료 3만원(판매금액의 7%)을 빼니 42만원이 딱 맞아 떨어지더라"며 허탈해 했다. 강경호(51·영양군 석보면)씨는 "대구의 친인척들과 출향인들을 찾아다니며 팔기 위해 수확한다"고 말했다.

칠곡군 가산면 주민들은 무·배추 소비촉진과 제값받기 차원에서 '학마을 김장축제'를 열어 도시민들을 초청하여 김치담그기 행사를 벌이고 있다. 학마을 주민들은 전영수(가산면 심곡리)씨의 배추 1천여 포기와 다른 회원들의 배추 3천여 포기를 구입, 김치를 담아 도시민에게 판매하는 등 배추농민들을 돕는다. 칠곡군 가산면 송학리 장주현(50) 부녀회장은 "김장축제에서 김치 1㎏에 3천900원을 받아서는 양념값도 충당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지역의 무·배추 소비에는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양군은 도시민들과 주민대상으로 김장 10% 더 담그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홍섭·이희대·김경돈·이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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