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경북도 자활자립대상 고령 양봉농 하왕식씨

입력 2004-11-22 13:31:20

"장애도 삶 의지 못꺽어"

"변변한 옷 한 벌 없으시면서 자식들 기죽을까봐 만원 한 장 곱게 접어 호주머니에 넣어주시던 아버지…진심으로 사랑합니다.

"

'11월 22일'. 하왕식(53·경북 고령군 성산면 기족리 338의 1)씨는 맏딸로부터 눈물을 적신 편지 한 장을 받았다.

유복자에다 불구의 몸으로 지내온 지난 세월이 눈처럼 녹아내렸다.

이날 하씨는 제13회 경북도자활자립대상까지 받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그의 인생은 굴곡과 아픔으로 점철됐다.

6·25전쟁통인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난 하씨는 7세 때부터 대구의 고아원을 전전했다.

외롭고 힘든 처지였지만 대구 비산동의 스웨터 공장에서 생계비를 벌고 야간 중학교도 다녔다.

군 복무 뒤에는 노동판을 전전하다 어머니와 고령군 성산면에 정착했다.

하지만 정착하자마자 자신의 삶의 버팀목이던 어머니를 잃고 말았다.

하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에 넋을 잃고 눈물만 흘릴 수는 없었다.

다시 정신을 차린 하씨는 1982년 무일푼으로 결혼하고 마을 사람들과 교회의 도움으로 단란한 가정을 꾸몄다.

그러나 당시 88고속도로가 나면서 자신의 집이 뜯겨버렸다.

융자금으로 겨우 집을 마련한 하씨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달팽이 사육에 나섰다.

불행이 또 겹쳐왔다.

달팽이 사료를 구입하러 고령읍으로 오토바이를 타고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13일 만에 깨어난 하씨는 대퇴부 골절과 오른팔 마비로 2년 간의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다리는 차츰 회복됐으나 팔은 사용할 수 없어 2급 장애판정과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받았다.

이때 받은 하씨는 생업자금 400만원으로 벌을 키우며 재기의 몸부림을 쳤다.

벌통이 40개로 늘고 연소득이 300만원을 넘으면서 융자금도 갚을 수 있게 됐다.

다시 아픔이 찾아왔다.

1993년 부인이 뇌졸중으로 세상을 뜬 것. 오뚝이 같은 삶은 이어졌다.

1998년 새 부인을 만나고 생업자금을 지원받아 벌 9통을 사육하며 4전5기에 나섰다.

일은 그런대로 순항했고, 두 딸은 착실하게 학교를 마치고 모두 직장을 잡아 집안에 보탬을 주고 있다.

이제 하씨의 가정에는 웃음과 희망만이 넘치고 있다.

하씨는 "왜 사느냐고요. 이제는 자신있게 답할 수 있습니다.

절망이 있으면 희망도 있고, 실패가 있으면 성공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힘들 때가 희망을 가질 때입니다.

"

고령·김인탁기자 ki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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