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능한 가지 말아야 할 곳이 경찰서, 법원, 병원이라고 한다.
살면서 나쁜짓 하지 말고 아프지 말라는 뜻일 게다.
이들 3개 기관과 관련해 또 다른 말이 있다.
경찰서, 법원, 병원에는 적어도 아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심지어 해당 기관의 본래 업무와 관련 없는 말단 직원이라도 알고 있으면 든든하다고 한다.
어두운 시절, 이 말은 돈 없고 힘 없는 서민들일수록 절실했을 것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이런 고정관념은 여전히 우리 삶의 주변에 머물고 있다.
의사들끼리 흔히 말하는 은어 중에 'VIP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다.
VIP 신드롬이란 의사 혹은 병원 직원의 지인(知人)이나 사회적으로 저명한 사람이 환자로 왔을 경우, 담당 의사가 다른 환자보다 더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합병증이나 부작용이 더 잘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또는 VIP 환자에게 너무 신경을 쓰거나 이로 인해 실수를 저지르는 것 등을 통틀어 일컫기도 한다.
의사들에게 VIP 신드롬에 대해 질문하면 저마다 한 두건 이상의 경험담을 늘어놓는다.
40대 초반의 내과의사 ㄱ씨는 레지던트 1년차 시절, 응급실 근무 중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의 다른 과 교수였다.
"집안의 조카가 배가 아파서 응급실에 갔는데 알아서 잘 봐달라"는 내용이었다.
ㄱ씨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증상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몇 가지 검사를 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한 탓에 도무지 무슨 병인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손에 진땀만 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꾸지람을 들을 것을 각오하고, 선배 레지던트를 호출해 문제를 해결했다고 아픈 기억을 떠 올렸다.
내가 아는 치과의사는 자기 몸에 이상이 있어 병원을 갈 때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또 친구나 선후배 가운데 의사들이 많아서 병에 대해 의논을 하거나 다른 의사를 소개를 받을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바로 VIP 신드롬이다.
"의사 입장에서 환자가 의사라면 부담을 갖게 될 수 있죠. 아무래도 병에 대해 설명하거나 치료하는데 있어서 신경이 쓰이게 됩니다.
그냥 의사가 양심껏 편안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
대학병원 산부인과 ㄴ교수는 대학병원에 가면 병의 경·중에 관계없이 교수만 찾는 일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한다.
ㄴ교수는 "출산으로 병원에 가는데도 교수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아기를 받아내는 일을 하는 의사는 대부분 레지던트들이다"며 "따라서 거의 매일 분만실에서 사는 레지던트가 교수보다 '분만'에는 훨씬 능숙한 편이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환자나 가족의 입장에선 VIP 신드롬에 대한 걱정은 사치에 가깝다.
서민들은 병원 직원이라도 한 명 알고 있다면 생명보험이라도 든 것처럼 뿌듯하다.
하지만 의사가 부탁을 받은 환자라고 해서 그 만을 위한 '비방'(秘方)이 준비돼 있는 것은 아닐 것이며 그럴 수도 없다.
또 부탁을 받지 않은 환자라고 해서 치료를 소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란 말인가. 부탁을 하면 안심이 되는 것을.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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