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를 지나온 내성천은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에 다다라 급히 허리를 뒤튼다.
그리고는 은빛으로 고운 10리 백사장을 끌어안듯 휘감아 돈다.
그 모습이 마치 용틀임 같아 회룡포(回龍浦)라.
강물은 허리를 펴고 쉬엄쉬엄 흘러갈 법도 한데 인접한 신당리 마을 앞을 지나며 또다시 용의 몸짓으로 동리를 크게 감는다.
그제서야 몸을 가지런히 추스리고 낙동으로 향한다
강변, 강둑 이곳저곳에 억새풀이 서있다.
강바람에 쓰러질 듯 휘청이다 다시 서고 또 휘청인다.
흰 솜털머리는 주변 산자락의 홍엽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회룡포의 만추를 연출한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군데군데 솟아난 회룡포 초입의 벼논도 도시민들에게는 정겨운 볼거리다.
논 곳곳에 날아든 멧비둘기들은 이삭 낱알갱이를 쪼아 먹느라 연신 부리를 놀린다
강변 추색(秋色)에 끌려 넋을 잃고 있다가 한 시간이 지나서야 회룡포 마을내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용궁면에서 회룡포로 오는 길은 하나다.
찻길은 강변에서 끊긴다.
차에서 내려 백사장을 따라가니 작은 다리가 나온다.
동내 사람들은 '아르방(건축용 철판)' 다리라고 했다.
강판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은 철판을 다릿발에 올려 놓았다.
70, 80년대 도로공사장이나 건축공사장에서 가도나 계단을 만들었던 방식으로 지었다.
골동품 취급을 받는 철판다리는 2년 전 수해 때 절반이 유실되고 초입부분만 남았다.
이 때문에 바지를 걷고 강물을 건너야 한다.
어릴적 물놀이가 생각나지 않을까.
마을에 직접 들어갈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비룡산으로 향했다.
장안사를 거쳐 도착한 회룡대 정자. 회룡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던 말 그대로였다.
회룡포 마을은 내성천을 감싼채 승천할 것 같았다.
물줄기가 돌아가는 경관만 따진다면 안동 하회마을이나 동강의 사행천보다 으뜸이라는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짙푸른 강물과 은백의 백사장, 마을내의 황금빛 들녘, 병풍처럼 들어선 주변 산의 오색단풍이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사람들이 기를 쓰고 이곳을 오르는 것은 이런 황홀경을 보기 위함이리라.
회룡포 마을 안으로 가보지 못한데 아쉬워하자 동행한 예천지기가 귀띔을 해준다.
마을 주민들은 모두 9가구로 벼와 고추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예천군이 올해부터 생태체험관광지 조성사업을 시작해 제방길로 노송을 심었고 주변에 잔디공원과 산책로를 만들었단다.
민박촌도 들어설 것이라고 한다.
예천·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주변 볼거리
◇가오실지=회룡포 방면 예천군 개포면 가곡리에 있는 인공섬을 끼고 있는 저수지. 섬안에는 수령 200년 넘은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주변 호수와 어우러져 빼어난 풍광을 만들어낸다.
최근에는 예천군이 야생화동산과 휴식공원을 꾸며 새롭게 단장했다.
◇산택연꽃공원=가오실 수변공원에서 문경방면 국도로 5분거리에 있다.
7, 8월 연꽃이 만발해 장관을 이룬다.
소공원형태로 조성된 정자와 나무의자가 저수지 주변을 두르고 있어 운전중 잠시 쉬어가는데 제격이다.
▧특산물
◇예천참우=참깨묵, 당근박 등으로 만든 특수사료를 먹고 자란 한우로 맛이 매우 뛰어나다.
국내 특급 한우브랜드이기도 하다.
◇예천참기름=예천 최고 농특산품 지역에서 자란 참깨를 볶아 정제한 것으로 맛과 향이 일품이다.
지보 농협에서도 제품이 생산되며 읍소재지 시장주변 전통참기름방에서도 판매한다.
▧먹을거리
용궁 면소재지 단골식당(054-653-6126)은 30년째 순대국밥과 오징어불고기로 유명하다.
이 식당에는 안동과 문경사람들까지 수시로 찾아 저녁 때는 차례를 기다려 음식을 사먹을 정도.
예천읍내 한국관식당(054-652-3369)은 복어불고기로 소문난 집. 8가지 야채에 육수를 부어 끓인 다음 복어살을 넣어 데치듯 익혀 먹는 별미 중의 별미.
▧회룡포 가는 길
예천읍내에서 문경 방면 34번 국도를 타고 유천면과 개포면을 지나면 용궁면소재지가 나온다.
여기서 회룡포 이정표를 따라 샛길로 가면 10분 거리. 회룡포 초입마을은 대은리다.
문경에서 예천방면으로 오는 길은 역시 34번 국도를 따라 문경면 산양면을 지나면 바로 용궁면소재지가 나온다.
비룡산 장안사 입구는 용궁농약사에서 회룡포로 가는 도중에 있다.
장안사 입구에서 장안사까지는 약 2km. 여기서 회룡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회룡대까지는 3분 정도 걸린다.
예천 회룡포 삼강나루
회룡포는 삼강나루터와 주막 할머니를 빼놓을 수 없다.
회룡포와 가까운 지근 거리에 있는데다 예천의 강나루와 이곳 민초들의 애환 어린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강은 예천을 지나는 내성천과 낙동강, 금천이 합류하는 곳이다.
행정구역은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지금의 삼강나루 주막이 생긴지는 어림잡아 70년 전. 유옥연(88)할머니는 이곳을 50여년째 지키고 있다.
할머니의 허리처럼 주막 집채도 휘어 세월의 흐름을 가늠하게 한다.
방문을 불쑥 연 불청객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 방안으로 들라고 한다.
"16살에 시집와 처음에는 앞동네에서 영감과 농사를 지었는데 6·25직전 영감이 세상뜨고 이 주막으로 왔지. 벌써 50년이 훌쩍 흘렀어"
당시에는 소금배가 다니고 나룻배로 예천읍내와 문경으로 오가던 사람들이 많아 벌이가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한다.
배가 끊긴 지도 20년이 넘었다.
새마을운동으로 큰길이 나고 물길을 가로질러 다리가 놓이면서 그랬단다.
그래도 주막을 찾는 이들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농삿일을 하던 동네사람과 장꾼들이 찾아 탁배기로 목을 추긴다
안주는 재료가 준비되는 대로 냈다.
텃밭에 푸성귀를 무쳐 내기도하고 마른 멸치, 과자부스러기, 라면국물 등 각색이다.
그중 고급은 매운탕이었다.
찾는 사람이 있으면 마을 어부에게서 물고기를 사다가 끓여 주었다.
"이제는 힘도 부치고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어 애써 장사를 하지 않아. 그저 맥주와 소주 몇병 가져다 놓고 담뱃값 버는 정도야" .
문경 사는 환갑 넘긴 맏아들이 몇번 같이 살자며 모셔가기를 청했지만 할머니는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먼저 간 영감생각, 자식을 위해 모질게 살았던 기억들, 스쳐갔던 숱한 사람들 얼굴을 지울 수 없기때문이라고 했다.
이제 이곳은 명소가 됐다.
50년대 이후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주막과 그 언저리의 이야기, 유 할머니의 삶의 여정을 보고 들으려고 객지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주막 뒤켠에 있는 200여년된 회화나무가 길 하나 건너 마을을 밝히는 휘황찬 수은등과 마주보고 서 있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삼강나루 주막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정경구 기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