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서-가부장제국 속의 여자들

입력 2004-11-12 08:46:11

우리 시대에 여자들은 아줌마, 미시족 혹은 어머니라는 이름 등으로 살아간다.

차도에서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솥뚜껑운전이라는 치욕을 당하기가 일쑤인 여성들.

'여'성/ 여'성'이라는 이름, 그리고 자기의 석 자 이름은 거세당한 채 가부장제가 강제한 낯선 명사들로 살아가는 여자들의 속내를 보여주는 책이 있다.

'가부장제국 속의 여자들'.

'가부장제국'이라는 말이 조금 낯설긴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가부장제의 제국, 즉 가부장제가 제국이라는 점과 각 국민국가들이 제국화해가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우리네 여성들이 가정 안팎으로 당하는 이중고를 동시에 지적할 요량으로 '가부장제'와 '제국'을 합성하여 '가부장제국'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네그리/하트가 공저한 '제국'에도 나와 있지만 평화가 진압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이러한 제국의 평화, 혹은 세계의 평화라는 논리를 우리네 가정 안으로도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소위 말하는, 가정의 평화란 이미 아버지에 의해 가족 구성원들이 진압된 상황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가부장제가 제국이라면 그것은 가족 안에서 아버지가 블랙홀로 존재하고 그러한 전제 위에 가족의 평화라는 논리가 구축되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다.

따라서 굳이 가정폭력을 문제삼거나 명령을 일삼는 남정네들의 숱한 언사들을 문제삼지 않더라도 대화가 아니라 침묵이 존재하고 자식이나 마누라로부터의 이견이 진압당한 공간이 가정이라면, 그것이 이미 가부장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저자는 책에서 여자를 어머니로 호출하는 논리를 여러 각도에서 살피고 여자들이 어머니가 되면서 상실했던 소녀성을 회복하라고 주문한다.

그래서인지 소녀같은 여자들의 발길이 나타나는 광경이 예사롭지 않아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욘사마에 열광하는 소녀같은 여자들을 보면 소녀를 회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녀에게 자신의 정신을 회수당한 것처럼 보인다.

성숙한 소녀란, 애시당초 불가능한 말인가?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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