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지구를 지켜라

입력 2004-11-09 09:00:40

사회적 병폐도 망상장애 조장

요즘 미국 대선과 관련된 망상을 가진 환자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망상의 내용은 시대와 이념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망상은 개인의 문화적 배경과 맞지 않는 믿음이 고착되어 교정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나는 부시의 측근이다', '위성에서 텔레파시를 쏜다', '이효리와 결혼하게 되어있다', '내장이 다 썩었다' 등 각각 과대망상, 피해망상, 애정망상, 신체망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망상장애는 자신보다는 주위 사람들이 더 견디기 힘든 질환이다.

자신 이외에는 모두 부정적으로 여기고, 남의 탓으로 돌리며,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 질환은 외견상으로는 이상을 발견하기 어려우므로 치료받기를 거부한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주인공 병구는 망상장애 환자다.

병구는 외계인이 아름다운 지구를 멸망시키고, 자기를 제거하려고 한다는 피해망상과 자기만이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을 가졌다.

그는 유제화학 강 사장을 외계인이라고 단정하고, 자신의 은신처로 납치해온다.

병구는 강 사장에게 행성의 비밀을 대라며 고문한다.

해괴한 일을 당한 강 사장은 속수무책이다.

피해망상이 있는 경우, 자신이 박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되면, 병구처럼 폭력적일 수 있다.

그럼 병구는 왜 이런 괴상한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 어린 시절 병구는 술주정뱅이인 아버지와 희생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내성적인 그는 항상 외톨이였고, 친구들에게 괴롭힘만 당했다.

어느 날, 병구는 어머니를 괴롭히는 건달에게 덤벼들면서 전과자가 된다.

그의 정당방위는 반복된 전과로 이어질 뿐, 세상은 아무도 그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강 사장이 경영하는 화학공장의 노동자로 일하던 중, 원인불명의 병을 얻는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를 보면서 병구는 악덕 기업주 강 사장과 사회에 대한 적개심이 최고조에 달한다.

병구는 공격 충동을 외계인에게 투사시킨다.

외계인이 지구를 공격하므로, 자신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나쁜 외계인에게 맞선다는 망상을 발전시킴으로써, 공격성으로 인한 책임감에서 스스로 보호하려는 일종의 방어기전에서 비롯된 셈이다.

정신의학자 노먼 카메론은 망상이 생기기 쉬운 몇 가지 환경을 기술하였다.

학대당할 가능성이 크거나 의심, 시기, 질투를 조장시키는 분위기가 느껴지거나, 사회와 고립되어 있거나, 자존심을 다치거나, 자신의 단점을 남에게서 발견한 상황이거나, 타인의 언행에 어떤 숨겨진 의미가 있지나 않은지 심사숙고하게 되는 상황 등이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불안해지고,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이것을 해석하려다보니, 망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뭔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해치려하거나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식으로 환자가 드러낸 조직과 사회를 '허위사회(pseudocommunity)'라고 하였다.

이 영화는 개인의 정상적인 자아체계를 뒤흔들어 정신병적 상황까지 몰고 간, 폭력적인 사회적 병폐요인도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 현실에서 가속화된 새로운 사회 가치관의 대두는 병폐의 실체를 간과한 통렬한 아이러니가 되어, 오히려 허위사회를 조장하여 더 큰 상처로 남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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