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이 산에서 도시로 내려와 우리와 황홀하게 눈 맞춘 적이 어느 날 있었던가. 온통 도시가 기품 있는 파스텔 작품 같이 되었다.
그래도 가을은 가을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의 그림자가 도시에 드리운지라 가슴 한구석이 쓸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가을 끝자락 나무들이 잎을 다 떨어뜨려버린 허전한 가슴속에 그 무엇이 대숲으로 출렁거리거나 곧은 소나무로 자리하고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그 무엇은 지금 여기 메마른 현실에서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일터인데, 그것은 우리 정신을 잠들게 하거나 육신을 쇠약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먼 곳의 그리움은 젊은 날 정신의 영토를 넓히는 삽과 괭이였고 나이 들면서 푸른빛을 잃어가는 마음에 타오르는 푸른 불꽃이었다.
그런데 최근 잡다한 일이 나를 삼켜버리어 내가 나를 잊어버리자, 자꾸 나를 괴롭히는 것 또한 그리움이다.
그것이 아직도 내 안에 꿈틀거리고 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
내가 여기서 말하는 그리움이란 일반적 통념에서 벗어나 있다.
보통 그리움이라면 젊은 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던 낭만적 감정이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생각해보라. 살아오면서 낭만적 감정이 오히려 밤길 같은 어려운 현실을 살아갈 때 더 반짝이며 우리의 길잡이가 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
그리움은 지금 여기 우리를 괴롭히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먼 곳과 대화하는 정신적 기도이다, 다시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그리움은 과녁을 향하여 날아가는 화살이면서 어둠을 뚫고 달려가는 밤기차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 때 그리움은 경직되고 팍팍한 논리가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우리 앞에 열어 보일 것이다.
흔히 우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한다.
나는 이 구절을 이렇게 고쳐서 말하고 싶다.
우리는 그리워하는 것만큼 볼 수 있다.
다만 그 높이와 깊이는 각자의 몫일뿐이다.
조두섭 시인·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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