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이삭줍기

입력 2004-11-02 15:02:35

가을걷이도 끝나간다. 넘실거리던 황금 물결은 빈 들판으로 변해 버렸다. 올 가을 유난히 많아졌던 메뚜기들, 논배미마다 벼룩 튀듯 어지럽게 뛰어 오르던 그것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도회지에서 소풍 나온 듯한 두 중년 여인이 가창 우록의 한 텅 빈 밭에서 허리 굽혀 뭔가를 열심히 줍고 있다. 떨어진 콩알이 더러 있노라며 웃는다. 모처럼 가을바람을 쐬자며 교외에 나왔다가 어릴 적 가을걷이의 추억을 떠올리며 재미 삼아 콩알을 줍는 모양이다. 아니면 유전자 변형 콩이니 수입콩 따위가 국산으로 둔갑하는 판에 확실한 토종콩이 어디냐며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오랜만에 본 그런 정경은 밀레의 화폭에 담긴 이삭 줍는 여인네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긴 예전엔 추수 후 한동안은 빈 들판마다 이삭 줍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인정 많은 사람들은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일부러 벼 이삭이니 콩 꼬투리 따위를 떨어뜨려 놓았다. 빈자들을 위한 이삭 떨구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지상정이었던가 보다. 구약 성경에도 젊은 과부 룻이 추수 뒤끝의 밭에서 이삭을 주워 홀시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했던 기록이 나온다. 그녀의 효심을 아름답게 본 밭 주인 보아스가 일꾼들에게 일부러 이삭을 떨어뜨려 그녀가 주워 가도록 배려하는가 하면 결국엔 부유한 지주인 그가 가난한 과부 룻을 아내로 선택, 해피 엔딩을 이룬 스토리는 유명하다.

하지만 기계로 벼를 거두는 요즘은 추수 뒤끝의 논이 말갛다. 더군다나 식생활의 서구화와 다이어트 열풍 등으로 해마다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판국에 벼 이삭을 줍는 풍경은 눈 씻고 볼래야 볼 수가 없다.

텅 빈 논엔 대신 까치들이 종종걸음을 치며 낱알을 쪼아 먹고 있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어느 순간 푸드득 날아오를 땐 수십 마리쯤 돼 보인다. 그야말로 새떼의 향연이다.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난 까치들이 곡식이며 과일이며 마구 쪼아 먹는 통에 농부들의 한숨이 깊다더니 그럴 만도 하겠다. 언제부터인가 그것들은 반가운 익조(益鳥)에서 귀찮은 해조(害鳥)가 돼 버렸다. 일부러 감나무나 사과나무에 까치밥을 남겨 놓던 사람들도 요즘은 "농사 망치는 말썽쟁이들에겐 까치밥도 아깝다"며 굳이 다 따 버린다고 한다. 이쯤 되면 까치들도 '말썽 너무 부리면 주워 먹을 낱알도,까치밥도 없겠군', 그 정도는 눈치 채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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