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희 · 30· 구미시 형곡동
잔정 없고 무뚝뚝한 아들 둘만 키워내신 할머니, 재롱 많고 살가운 손녀딸을 돌보며 또 다른 사랑을 알게 되셨고, 가슴 속 깊은 정을 다 쏟아내셨다.
시집온 지 두 해 만에 일어난 한국전쟁, 할아버지를 나라에 바치시고 일찌감치 홀로되신 할머니의 방은 늘 그리움의 빛깔로 채워져 있는 듯했다.
코 흘린 자리 미처 훔칠 줄도 모르던 어린 시절, 할머니의 검은색 자개농 문이 뽀롯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언젠가 그 속에서 감춰두신 눈깔사탕 하나씩 나오는 걸 보았더랬다.
할머니 눈깔사탕 얼마나 있을까? 그냥 둬도 그 사탕 모두 내 것인 것을 끝내 옷장 문을 열고 말았다.
속곳 버선부터 속치마까지 와르르 쏟아지는 할머니의 속내들…
그리고 미처 사탕봉지 나오기 전에 내 손에 잡힌 작은 상자 하나.
무심결에 열어보니 학교 들어갈 때 아빠가 사 주마 약속하셨던 공책과 머리에 지우개 쓴 연필 한 자루.
'이게 뭘까? 아, 할머니가 주실 내 선물인가 보다.
'
공책 이 장 저 장 뒤적이며 온통 어지러이 낙서해 둔 그날, 난 처음으로 할머니께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났었다.
기억에 아련하지만 나는 사탕은 하나도 먹지 않았다고 빌었었다.
세월 흘러 새색시같이 윤나던 자개농의 고운 자태가 빛을 잃어갈 즈음…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그 해였다.
연로해지신 할머니 생신 날, 선물로 산 내의 한 벌 몰래 넣어두기 위해 할머니의 자개농을 다시 열었다.
포장한 새 내의 밀어 넣는데 얼핏 눈 끝에 와 걸리는 작은 상자. 아련하긴 하지만 언젠가 내가 보았던 그 상자가 맞는 듯했다.
조심스레 열어보니 답답한 숨 토해내는 낡은 공책 세 권과 수많은 이면지들. 그리고 닳아져 짧은 몽당연필 세 자루…
그 속에서 나는 수년 동안 답답하게 숨어있던 할머니의 비밀을 보고 말았다.
정. 묘. 악. 김. 길. 상. 봉. 곡.
공책과 이면지들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는 오로지 여덟 자 뿐이었다.
내가 학교 들어가 글 배울 때, 유난히 따뜻한 손으로 머리 쓸어 주시고, 커가면서 깨알 같은 글씨의 두꺼운 책 쥐고 읽던 나를 기특하다며 등 쓸어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파도처럼 크게 밀려왔다.
그리고 막 한글을 배우며 떠듬떠듬 책을 읽기 시작한 내게
"아유… 기특다.
까막눈인 나보다 백 번 낫다.
그자? 암, 배워야제. 열심히 배우거래이. 알었제?"
아픈 가슴으로 하셨을 그 말씀도 기억났다.
까막눈, 까막눈, 까. 막. 눈…
한 번도 할머니가 글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하실지 그런 생각 해보지 못했었다.
할머니의 낡은 공책엔 세상을 살아가며 느꼈을 가장 큰 불편함을 혼자서 이겨보려는 최대한의 안간힘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었다.
할머니 함자 정묘악. 할아버지 함자 김길상. 그리고 할머니가 시집와서 칠십 평생 한을 묻은 촌 동네 이름 봉곡.
한참 동안 뜨거운 가슴으로 명치 끝이 아려와 공책을 덮지 못했다.
그날밤…
조심스레 나누었던 할머니와의 많은 이야기.
그래도 컸다고 첫 정을 쏟았던 내게 할머니는 정말이지 많은 서러움을 풀어내셨다.
어려운 시절을 사시느라 학교는커녕 글 한자 못 배운 한스런 어린 시절 얘기부터 'ㅂ'모양과 'ㄱ'모양 푯말을 보고 버스를 탔다가 다른 동네로 가는 바람에 당혹스러웠던 웃지 못할 이야기며 병원이나 관공서에 볼 일을 볼 때마다
"나는 까막눈이라 암것두 모르는디…"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기가 익숙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 부끄러움에 입술 달싹여야 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 결코 죄가 될 수 없었지만, 또 그 누구에게도 내보일 수 없었던 부분이기에 할머니의 상자는 그렇게 깊은 곳에 있어야 했다.
그래도 최소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름 석 자와 동네이름은 알아둬야겠다 싶어 적고 또 적어가며 눈으로 익혀 오셨던 게다.
늘 할머니를 뵈면서도 왜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는 그토록 무심했는지 죄송스러웠다
나는 새 공책과 연필 한 타스. 예쁜 지우개를 할머니께 선물했다.
그리고 잠자기 전 30분씩 할머니께 한글을 가르쳐 드리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공책엔 ㄱ ㄴ ㄷ ㄹ…ㅏ ㅑ ㅓ ㅕ… 자음모음들이 새 희망처럼 쌓여갔다.
처음 부끄러워하고 꺼려하시던 할머니는 한 자, 한 자 한글을 깨쳐 가시면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그때의 할머니의 얼굴빛을 잊을 수 없다.
"아이구, 내가 글을 읽다니 이게 꿈이가 생시가 으이?"
새 공책만큼이나 할머니의 얼굴도 새로운 것을 깨쳐가는 것에 대한 희열로 빛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할머니의 세상에 대한 자신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외출은 전에 없이 당당해지셨으니까.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다.
나는 요즘도 가끔 할머니께 편지를 쓴다.
또박또박 큰 글씨로…
그리고 할머니의 답장을 기다린다.
비록 부드럽지 못한 글일지언정 할머니의 애틋한 사랑을 읽기엔 넘치고도 남는 따뜻한 편지다.
전화통화로는 나눌 수 없는 사랑편지다.
할머니의 노년에 펜 벗이 되어 드릴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말갛게 익어 오른 하늘이 눈부시다.
오늘도 하얀 편지지에 편지를 써야 할까 보다.
해마다 연로해져 가시는 우리 할머니께 사랑한다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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