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重視, 과정 無視'의 교훈

입력 2004-10-22 12:05:35

'행정수도 이전'의 대역사(大役事)-비록 그것이 정략적 대선 공약이었다손 쳐도 '잘 주물러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든가, 아니면 "대선에서 재미 좀 봤다"는 정도에서 끝냈으면 될 것을 노무현 대통령은 이 사업에 정권의 명운을 걸었다. 헌재(憲裁)는 그의 무리한 투자와 오산(誤算)에 '위헌'으로 답했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패배다. 이 패배가 대통령 자신과 여당 패배만으로 끝난다면 다행이다. 정치가, 경제가, 이 사회가 사이좋게, 풍요롭게 굴러가기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패배로 확산될까 그게 두려운 것이다.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해 헌재 재판관 아홉 명은 8대 1로 위헌 판정을 내렸다. '대한민국 수도=서울'이라는 표현으로 관습헌법상의 수도임을 명백히 하고, 그걸 바꾸는 덴 헌법 개정쭭국민투표라는 절차상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절차상의 결정적 잘못 때문에 특별법은 휴지가 됐고, 사실상 수도 이전이 불가능해졌다는 얘기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국회의원의 3분의 2, 즉 200명이 있어야 하는데 열린우리당이 어디서 그 많은 숫자를 구해온단 말인가.

헌법재판관들은 판결로서 말했다. 국민 여론과 거꾸로 갔던 대통령 탄핵이 위헌이었듯이, 국민 여론과 거꾸로 갔던 수도 이전도 위헌이었다. 그렇다면 국민 다수의 여론과 거꾸로 가려고 하는 국가보안법의 운명은 어찌되는 것인가? 노 대통령과 집권당에 여러 가지를 생각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목적)도 수단'방법이 잘못되면 정당성을 상실함을 여야 함께 깨닫기 바라는 것이다.

문제는 위헌 결정이 난 지금부터다. 본란은 우선 노 대통령이 냉정을 되찾기를 주문한다. 개혁에의 맹신과 오만에 빠져 혹여 이런 문제의 발생을 우려하고, 바른 소리하는 참모가 왜 하나도 없이 "못 먹어도 고(GO)"만 외쳤느냐 하는 내부적 비판도 반드시 있어야 할 터이다. 이런 반성이 없을 경우 많은 국민들은 또 노 대통령의 승부사 기질을 우려하게 된다. 청와대가 계속 수도 이전을 꾀하는 또 다른 전략에만 신경 쓴다면 정국의 대승적 운영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헌재의 관습헌법론에 대해 "처음듣는 이론" "분수를 망각한 오만방자한 헌재"라는 여권의 첫 반응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당장 위헌 판정의 여파가 친노 또는 반노 세력의 재결집을 통한 제2'제3의 세대결 현상으로 변질돼 가서는 안 된다. 집권층의 '무리수'에 대해 내려진 위헌 판정이라면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두말 없이 승복해야 한다. 지역간 친노'반노 간에 빚어진 갈등과 대립은 제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한나라당의 환호성도 못마땅하다. '충청도 표'라는 정치적 계산 때문에 특별법을 같이 만든 게 누구인가? 한나라당은 '위헌'의 공범이다. 국가의 명운과 직결되는 중대사를 정권 쟁탈전의 한 도구로 이용해온 양쪽의 잘못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여론 무시'에 대한 헌재의 경고는 지금 국회를 정쟁으로 몰아가고 있는 국가보안법 등 4대 개혁법안에도 연결되는 사안이다. 여당뿐 아니라 야 3당이 따로 따로 내놓고 있는 이들 법안은 국가안보와 헌법 저촉성의 여부를 바탕으로 원점에서, 사심없이 논의하라는 경고라고 우리는 본다. 노 대통령과 여'야 모두, 수도권과 충청도 사람 모두 호랑이 등에 올라탄 기분일 터이지만 그때 우리 속담은 어찌하라고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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