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칼럼-여기는 일본 도쿄

입력 2004-09-21 11:51:05

내가 여기에 오게 된 이유부터 말하자. 바쁜 걸 자랑하자는 게 아니라 오는 10월 5일과 6일 양일간 나는 '조영남 데뷔 35주년 기념 비공식 은퇴공연'을 앞두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지난 일주일을 도쿄에서 홀랑 보내야 했다.

왜냐. 그 사연은 2002년 월드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나는 공교롭게도 도쿄에서 왔다갔다하며 KBS의 '조영남이 만난 사람'을 찍어야 했고 일본 축구가 일찌감치 16강에서 떨어져 나가고 우리 한국만 16강.8강.4강까지 가는 동안 나는 마지막 두게임을 일본에서 관람했다.

그때 일본 사람들이 별다른 이유없이 한국팀을 응원해주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보고 한국에 돌아와서 "많은 일본사람들이 아무 조건없이 한국을 응원해주더라. 우리가 반대입장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일본에 대한 편견을 바꿨노라"는 내용으로 칼럼 한편을 썼더니 정확히 2년 후 일본문화교류기금(Japan Foundation)이라는 데서 공식초청이 들어와 7박 8일 예정으로 일본을 두루 둘러 볼 수 있는 뜻밖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초정하면서 재미있는 것은 내 임의대로,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조건, 즉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 먹고 자고 싶은 곳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단서에 솔깃해서 초청을 마다할 수가 없었다.

하여간 일본에서 제일 높은 한 사람만 빼고 다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는 태세였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제일 흥미롭게 만나고 싶은 사람은 내가 최근에 본 영화 '호텔 비너스'의 주인공 초난강과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작품상까지 따 낼 만큼 기막힌 영화를 만들어낸 다까하라 감독이었다.

내가 왜 그토록 만나보고 싶어했는지는 영화를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다.

도대체 누가 믿겠는가? 그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일본 배우들이 한국말로 대사를 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한국영화나 다름없이 만든 거다.

도대체 왜 저 일본사람들이 한국말로 저토록 기막힌 영화를 만들었을까? 그것이 궁금해서 약속장소를 찾아 갔는데 또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몰랐는데 일본에도 내가 진행하는 TV프로그램 '조영남이 만난 사람'과 흡사한 후지TV의 '초난강'이라는 타이틀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초난강이 직접 진행하는 것으로 오히려 그쪽에서 나를 그 프로그램에 전격 출연시켜 주는 것이었고, 나의 모든 것을 알리는 한편의 TV프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네들이 왜 그토록 한국에 관심을 가졌는지? 왜 그런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물었다.

나는 물론 깜짝 놀랄만한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이네들의 답변이 영 신통치 않았다.

그냥 한국이 좋았고, 한국영화가 좋고, 겨울연가가 좋아서, 한국말로 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었는데, 글쎄 그게 말이 되는가? 미국이 좋고 할리우드가 좋아서 우리는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배우 전부가 미국말로 대사하는 영화를 만든 적은 없다.

또 일본사람이 미국말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그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세계시장을 노리기 위해선 한번쯤 순발력있게 해낼 수 있는 기획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일관계가 처음부터 끝까지 껄끄러운 관계였는데 왜 하필 일본사람이 온통 한국말로 영화를 만들었을까. 더구나 수상한 건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한국에 관한 스토리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서서히 그 원인을 알게 됐는데 그런 분위기를 몰아가기까지는 한국피를 가지고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청년이 그 뒤에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늘 내가 이 지면을 통해서 알리고 싶은 세 일본 친구들(도모다찌)의 이름은 초난강, 다까하라, 그리고 일본에서 자란 한국청년, 이름도 근사한 허한조(許閑朝)다.

한조군과 나는 물론 엊저녁 한국술집에서 방광이 터지도록 술을 마셨다.

조영남(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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