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구 학생문화센터 농구장에서 땀투성이가 돼 농구를 하는 한 무리의 고교생들을 본 적이 있다. 밤10시가 넘었는데도 거친 호흡으로 달리는 10대들의 모습이 보기 좋아 한참을 구경했다. 쉬고 있는 학생에게 물었더니 학원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하나 둘 자발적으로 모인 거라며 한 마디 던졌다. "학교서는 농구 못 하죠. 시간도 없고, 흙투성이에 골대도 시원찮은 운동장에서 어떻게 하나요."
교육부가 해마다 내놓고, 언론들이 그때만 잠시 호들갑을 떠는 '덩치만 큰 약골 학생들'에 대한 조사 결과가 21일 발표됐다. 매년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골자는 학생들의 키와 몸무게는 늘었는데 달리는 능력이나 근력, 지구력 등은 떨어졌다는 내용이다.
학생들의 체력 저하나 학교 체육의 문제점이 도마에 오른 것은 한두 해 된 일이 아니다.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된 뒤로 체육이 선택과목으로 바뀌면서 더 심각하다는 얘기도 이미 나온 것들이다. 교육부와 언론들은 앵무새처럼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원인에 대해서는 체육 시간 감소, 체력장 폐지, 운동 부족 등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학교 체육 시간을 늘리고 식생활 습관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교육부의 대책도 마찬가지다.
이런 인식으로 변화가 생길 리 없다. 학교 수업 시간을 늘린다고 공만 몇 개 던져주는 이른바 '아나 공'식 체육 수업이 달라지진 않는다. 식생활 습관이야 가정의 몫이 더 크니 학교 차원에서 쉬울 수도 없다. 학교 체육의 개념 자체가 바뀌지 않고서는 기대할 게 없다.
특기·적성교육이 처음 시작된 1999년의 일이다. 고교마다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고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했더니 수영, 볼링 등을 하겠다는 학생이 넘쳐났다. 교내에 시설이 없어 근처 스포츠센터를 오가느라 골치가 아팠던 학교들은 이듬해부터 슬그머니 이들 과목을 하나 둘 빼버렸다. 그 자리는 입시에 도움이 되는 교과 관련 과목들이 대신했다.
'소탐대실'의 전형적 사례다. 체육 한두 시간 줄여 공부를 시킨다고 학습량이 크게 늘어날 수는 없다.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체력이 필요하다는 평범한 진실을 외면한 근시안적 발상으로는 체력도 잃고 실력도 잃기 십상이다.
시설이 부족하고 예산이 없다는 하소연은 핑계가 아닐까. 한 블록 건너 헬스클럽이 생기고, 곳곳에 수영장이 들어서는 웰빙 시대다. 운동을 싫어한다면 학교 근처 산책이라도 정기적으로 시킬 수 있다. 이제는 학교와 가정이 머리를 맞대고 학생들의 체력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매주 마을을 한 바퀴 달리는 5km 크로스컨트리 시간이 있었습니다. 일정 시간 내에 들지 못하면 학부모를 호출해 '자가용으로 등교 시키느냐' '운동은 뭘 시키느냐' 따져 묻고는 함께 체력을 기를 방안을 모색하자고 했습니다."
영국 런던에 교환교수를 다녀온 한 교수의 얘기다. '체력은 국력'이란 낡은 슬로건은 사라졌지만 '체력은 실력'이란 진실은 언제 어디서든 변하지 않는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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