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의 고하에 관계없이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양인은 누구나 국방의 의무를 지게 됐다.
1415년 11월 정부는 군역 체제를 정비, 모든 양인은 정병(正兵)과 봉족(奉足)으로 나누어 군역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신체가 건강한 자는 모두 군인이 돼 궁궐을 지키거나 지방의 요새지에서 군역을 담당해야 한다.
또 현역병인 정병에서 제외된 자는 봉족이라 하여 정병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봉족제의 필요성에 대해 "모든 장정이 현역으로 복무할 경우 토지 경작에 필요한 노동력 부족으로 경제기반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부관계자는 "정군 해당자는 육군 또는 수군에 복무하게 되며, 복무기간 중 요역( 役:국가에서 요구하는 노동의무)이 면제될 뿐만 아니라 농사를 위해 봉족이 할당된다"고 밝히고 "고려시대와 달리 봉족이 군인전(軍人田)을 경작해 정군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군에게 포(佈)를 바치는 만큼 정군들의 부담은 가벼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또 "호패제도 실시와 대대적인 호구조사를 통해 군역대상자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정군 대상자도 일 년에 두 달씩만 번갈아 근무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군역 개편안에 대해 양반 지주들과 관리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경상도 경주의 한 지주는 "정부의 새 군역안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양인이 군역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신분관계가 명확한 우리 전통을 무시한 처사"라며 "주변의 힘깨나 쓰는 관리나 지주들은 모두 군역을 피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해 정부의 이번 군역안이 제대로 정착될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일부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 공부에 별 뜻이 없음에도 앞다투어 향교에 입학, 군역을 회피하고 있다는 제보가 빗발치고 있다.
한 제보자는 "가르칠 만한 스승 하나 없는 향교가 있는가 하면, 학생들 중에는 공부는 고사하고 일년 내내 술판에 절어 지내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군역 회피는 가난한 농민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농민들 중에는 군역을 피하기 위해 중이 되거나 스스로 부잣집 노비로 들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군역을 피해 부잣집의 노비가 된 김 아무개씨는 "너도나도 군역을 기피하는 바람에 남은 사람들이 더욱 힘든 군역을 지게 돼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며 "부담이 커지니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도망치고 그 부담이 이웃의 이웃으로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군역 대상자의 도망이 속출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농촌마을이 텅 비어버리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새 군역제도 발표 이전인 1413년 16세 이상의 모든 남자에게 신분증인 호패를 발급했다.
호구 파악과 유랑민 방지를 위해서였다.
정부는 호패제도가 부역의 안정적 조달과 신분질서의 확립, 향촌의 안정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기대와 달리 많은 양인들은 "호패를 받으면 각종 역을 부담해야 한다.
호패가 있다고 어떤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족쇄를 찰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국 각 지방에서 세력가에게 자신의 몸을 위탁해 노비가 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양인 수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돼 호패제 정착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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