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브런디지, 사마란치 그리고 로게

입력 2004-08-18 11:42:01

'최후의 아마추어' '화석처럼 머리가 굳은 노인' 등의 평을 받은 브런디지는 1952년부터 20년 동안 IOC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올림픽의 아마추어리즘을 굳건히 지켰다.

삿포로동계올림픽 때는 상품선전에 나온 알파인 스키선수를 제명하기까지 한 철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올핌픽에서의 아마추어리즘은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60년대 들어 올림픽이 규모가 커지면서 개최국의 적자가 늘기 시작하더니 76년 몬트리올대회는 10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고, 이에 IOC와 개최국들은 위기의식을 느껴 수익성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올림픽의 상업화에 불을 붙인 주역은 당연히 80년부터 21년 동안 IOC의 수장을 맡았던 사마란치였다.

그의 첫 작품인 84년 LA올림픽이 2억 달러의 수익을 챙겼으니 전 대회들과는 격세지감의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68년 멕시코, 72년 뮌헨, 76년 몬트리올, 80년 모스코바올림픽 못지않게 84년 LA 또한 문제투성이의 올림픽이었으나 대회의 흑자라고 하는 점이 올림픽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어쩌면 올림픽의 부흥은 이 때부터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사마란치는 프로선수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아마추어리즘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아마추어 스포츠세계에도 '스포츠는 돈'이라는 등식을 성립시켜 올림픽을 혼탁한 시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와 함께 99년 솔트레이크시티 스캔들, 아들을 IOC 위원으로 만든 사건, '종신 명예위원장'직을 만들어 스스로 취임한 행위 등도 위원장 말년에 얽힌 추문들이다.

이는 국제스포츠기구 대부분 집행부 연임규정에 제한이 없고, 행정.재정에 대한 감시기능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인맥과 재정을 장악하고 있는 실력자의 전횡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김운용 사건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2001년부터 IOC의 총책을 맡은 로게는 '미스터 클린'이라고 하는 개혁 이미지로 출발하였다.

정형외과 의사라고 하는 직함과 함께 벨기에 요트대표로 올림픽에 3회 연속 출전한 경력이 있어 브런디지에 이어 두 번째 올림피언 출신이라는 강점이 있다.

더욱 그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IOC 수장으로서 '작은 올림픽' '금지약물 사용근절' '부패청산' 등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무분별해진 오늘날의 올림픽에 대한 경고용 메시지로 합당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로게가 주창한 '작은 올림픽'은 규모의 축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올림픽의 개최가 제3세계 국가들에게도 가능하게 된다는 올림픽 이념인 '보편성의 추구'로 연결되며, '금지약물의 근절'은 스포츠장에서 인간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인간성 회복'의 차원이다.

그리고 '부패청산'은 스포츠 마피아단으로 분류되는 일부 권력자의 '도덕성 확보' 문제이다.

사마란치의 후광을 입고 위원장에 오른 이상 그의 개혁운동은 '찻잔 속의 태풍'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일부의 비아냥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의 실현을 위한 전 세계인의 협력적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한계의 벽을 넘는 것도 좋고, 번쩍이는 대회의 모양새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지구촌 스포츠축제가 '동물 싸움장'으로 끝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동규(본지 올림픽자문위원.영남대 스포츠과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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