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농촌-(1)무너지는 농촌사회

입력 2004-08-09 14:13:28

"대안없다"…'마지막 탈농'속출

농업인들이 농촌을 떠나고 있다.

그에 따라 농촌지역사회도 흔들리고 있다.

현재 농촌의 가장 큰 문제는 소득보전도, 갈수록 드세지고 있는 개방압력도, 농업 구조조정도 아니다.

어떻게 농촌사회를 유지할 것인가가 최대 관건이다.

이때까지의 농업정책이 소득위주의 산업으로서의 '농업'에만 초점을 맞춰왔다면 이젠 '농민'의 삶의 질 향상과 '농촌' 지역사회로 관심을 옮겨가야 할 때다.

어떻게 농촌사회를 유지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지금의 농촌 현실을 되짚어보면서 대안을 찾아본다.

1)무너지는 농촌사회, 현실

"농촌에 희망이 사라진 지 오래고, 더 이상의 대안은 없습니다.

"

의성군 다인면 서릉리에서 쌀농사 2만평(100마지기)을 짓고 있는 박만진(49)씨가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가 뭘까.

박씨는 연간 6천600만원의 소득(40kg 기준 벼 한가마에 5만5천원에 거래될 경우)을 올린다.

6천600만원의 소득으로 1억원을 호가하는 농기계(대형 트랙터 5천500만원, 콤바인 3천400만원, 이앙기 1천400만원, 건조기600만원)와 화물차의 유지운영비, 감가삼각비 2천만원, 영농비(비료'농약'종자대 등) 1천만원, 인건비 1천만원, 농지 임대료(6천평) 600만원을 제하면 2천만원이 남는다.

2천만원으로 두명의 자녀 학자금(대학생.고교생) 1천500만원을 빼면 손에 남는 것은 500만원 뿐.

500만원으로 일년을 살아야 하는데 쌀시장이 개방될 경우 수입은 이보다도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박씨는 앞이 캄캄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농사일을 접고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김영욱(33'청도군 화양읍)씨는 전문대학을 나와 농사(농지 6천평)를 짓다 농기계값, 농자금 등 농협부채 3천여만원을 갚을 길이 없자 2년전 농지 4천평을 팔아 빚을 청산하고 현재 부산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좀더 일찍 농촌을 떠나지못한 것을 후회한다.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에서 논농사를 짓던 김인만(45)씨는 지난해 자녀 교육(고교진학)문제로 농사일을 접고 포항철강공단내 근로자로 취업했다.

김씨는 "월평균 급여가 250만원선으로 오히려 힘든 농사일보다 편하다"며 "포항 철강공단근로자 월급이 상대적으로 타 도시에 비해 높다보니 탈농촌현상을 부채질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농현상에 따른 농촌 인구 대이동은 이미 끝난지 오래라는 진단도 나온다.

영양군청 신성도 총무과장은 "떠날 젊은층이 없어요, 이농현상의 감소는 벌써 몇 년전쯤으로 농촌을 떠날 사람은 이미 거의 떠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청송군청 한 관계자도 "요즘 농촌지역 젊은부부들의 야간도주는 사라진 반면 늘어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자살하는 사례가 늘어난다"고 했다.

지난 3월 26일쯤 신모(40.청송 파천면)씨를 비롯해 하루에 4명이 음독자살했고, 올들어 청송지역에서는 농가부채 문제로 5월말 현재 30여명이 목을 매거나 음독자살을 했다.

성서'용산동 등 대구 달서구와 서구 아파트 밀집단지에 생활권을 두고 아침 일찍 성주지역 밭으로 출근해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 귀가하는 '출퇴근 영농'이 유행병처럼 번지면서 농촌지역의 공동화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선남면 도흥리 참외밭으로 매일 '출'퇴근'하는 김영만(44.달서구 성서아파트)씨는 "순전히 아이들 교육때문에 4년전 이주했으나 나 혼자 고생하면 나머지 가족들은 도시에서 편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김씨는 도흥리의 경우 20여명이 자신처럼 대구로 이사해 출'퇴근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했다.

참외농사(3천평)로 연 4천여만원의 소득을 올린다는 그는 학원 등 교습소 시설이 미비하고 병원이 1곳에 불과하는 등 생활기반시설의 태부족을 이주 이유로 꼽았다.

'기러기 아빠'도 늘어나고 있다.

성주군 선남면 용신리에서 혼자 생활하며 3천여평의 참외농사를 짓는 정한석(46)씨는 고교생, 중학생 자녀와 부인은 대구시 달서구 두류동에 거주하고 있다.

정씨는 "상대적으로 학교 환경이 좋은 대구로 얘들을 보낼 수 밖에 없지 않느냐. 주변 사람들도 자녀의 대구 유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고 전했다.

이처럼 매년 성주를 떠나는 초교생이 100여명에 달해 농촌 1개 학교 전교생 수준임을 빗대 성주교육청 관계자들은 "1년에 학교 1개씩이 없어진다"는 자조섞인 한탄을 하고있다.

밤이 되면 농촌지역 공동화현상은 더 심각해진다.

직장인, 공무원, 교사 등이 자녀교육과 문화생활을 이유로 인근 도시지역에서 출퇴근하고있기 때문이다.

성주교육청이 관내 초교'중학교 교원 318명을 상대로 주소지를 조사한 결과 75%인 239명이 대구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초교 교원 203명의 경우 대구 거주가 무려 161명이나 되며 성주는 17명이고 칠곡(9명),김천(8명) 순이었다.

중학교는 115명 중 대구 78명인데 반해 19명이 성주 거주자로 조사됐다.

성주군 공무원도 전체 500여명 중 70%가 대구에 거주하고 있다.

군위교육청 관계자는 "우수학생들의 대도시 유출을 막기 위해 '내고장 학교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교사들이 외면하는 농촌 학교에 학생들만 붙잡기엔 역부족"이라며 "명문고 육성 등 교육여건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한 교사와 학생의 역외유출은 가속화할 것"이라고 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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