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람 모이는 도시로-(8)대형 병원들의 갈길

입력 2004-07-23 08:57:08

의료 시장 개방, 현실에 못 미치는 의료수가(의료서비스가격), 환자(소비자)의 요구 증가 등으로 국내 의료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특히 대구의 병원들은 열악한 자본, 서울과 해외로 환자의 유출 등으로 인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위기는 변화를 요구한다.

■전문화.차별화가 살길

의료계와 병원경영학계에서는 서울의 후발 대형병원인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을 전문화, 차별화의 성공 사례로 꼽는다.

1989년 문을 연 서울아산병원은 설립 초기부터 장기이식 분야를 전략 부문으로 집중 육성해 10년 만에 신장이식 수술 1천건 성공기록을 세우는 등 국내는 물론 해외서도 독보적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보다 늦게 개원(1994년)한 삼성서울병원은 '환자 중심 병원'의 개념을 도입해 다른 병원과 차별화했으며 다른 대학병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병원, 특히 대학병원의 전문화와 차별화는 편의성과 친절 서비스에만 집중해선 성공할 수 없다.

대학병원이 최고로 인정받으려면 고난도 질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하는 수준에 올랐을 때 가능하다.

우선 기존의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각 임상과 단위의 진료 형태에서 벗어나 기대효과가 높은 진료영역을 선정해 집중 투자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과별 구분으로는 환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없다.

물론 대구의 대학병원들도 최근 뇌졸중센터, 뇌성마비센터, 탈장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유기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임상과별 형평성 등에 연연해 공격적인 투자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병원 관계자들은 전문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최소 9개 전문과를 갖춰야 하는 대학병원의 설립 조건 때문에 전문화 전략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체념한다.

그러나 병원경영 전문가들은 이를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특정 영역을 전문화하는 것은 기존의 종합병원 체제를 부정하는 개념이 아니라 '대표선수'를 육성하자는 뜻이라는 것이다.

■전략적 네트워크 필요

병원의 네트워킹 전략은 병원 간 전략적 제휴나 의료전달 체계 구축을 의미한다.

대구 병원계의 경우 대부분 큰 병원과 작은 병.의원들이 '협력병원'을 맺고 있다.

의원이 보다 종합적인 진료가 필요한 환자가 있을 경우 병원(대학병원)에 환자를 의뢰하고 의뢰받은 병원은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한 뒤 다시 의원으로 돌려보내는 체계이다.

그러나 의뢰받은 병원들이 환자를 다시 의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일이 잦아 의원들의 불만이 많다.

모 외과 원장은 "큰 수술을 해야 할 환자를 대학병원에 보내지만 대학병원측은 수술 후 관리까지 도맡고 있다"며 "큰 병원이 사실상 의원의 환자를 뺏는 꼴"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지역의 대학병원 간 진료 영역의 교류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ㄱ대학병원이 대구에 같이 있는 ㄴ대학병원의 장기이식술의 우월함을 알면서도 그곳에 환자를 보내지 않고 아예 서울로 의뢰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영남대병원 정형외과 모 교수는 "상당수 교수(의사)들이 지역의 다른 대학병원에 환자를 보내는 일을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지역 의료계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첨단장비를 도입할 때도 지역간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다.

지난해 경북대, 영남대병원 등 대구의 4개 대형병원들이 첨단 암 검진 장비인 PET(양성자방출단층촬영기) 도입을 추진했다.

그동안 대구엔 이 장비가 없어 상당수 암 환자, 고급 건강검진 수요가 서울로 유출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잉 중복투자란 지적이 있다.

모 진단방사선과 원장은 "지역엔 PET 이외에도 부족한 첨단 고가장비가 많다"며 "대구의 병원들이 서로 다른 장비를 구입해 공유할 수 있도록 '신사협정'을 맺어야 하며, 이렇게 해야 환자의 유출을 줄이고 투자의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스타의사', '전문경영인'을 키우자

병원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만한 스타의사를 발굴, 육성해야 한다.

병원이나 의사들 사이에선 누가 실력파인지 잘 안다.

그러나 보수적인 대구에선 튀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환자들은 유능한 의사들은 서울에 몰려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송정흡 경북대병원 산업의학과 교수는 "대구에도 전국 최고, 아니면 전국 상위권에 속한 의사들이 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육성해야 한다"며 "이는 해당 의사, 해당 병원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구 전체 병원계가 사는 길이다"고 조언했다.

대구에선 대학병원의 경영을 맡은 핵심 간부(보직교수)를 '집행부'라고 부른다.

경영에 대한 개념 부재를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이다.

일반적으로 '집행'이란 용어는 정해진 예산대로 돈과 사람을 쓴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미래에 대비한 전략적 기획이나 마케팅의 개념 도입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학병원의 경영을 책임져야 할 의료원장(병원장)은 의사(단, 대구가톨릭의료원장은 병원경영학을 전공한 사제)들이다.

이들은 경영에 대한 수련이 없는 상태에서 선임되거나 선출된다.

재임기간 중에도 의사의 역할을 겸한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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