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길을 묻다-(9)신들의 나라

입력 2004-07-20 08:58:39

소설가 박희섭의 기행

빠른 템포의 종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에 잠을 깬다.

일과처럼 행해지는 힌두교인들의 새벽기도 시간이다.

창 밖은 아직 캄캄하다.

기도는 한참을 이어진 후에야 평화가 찾아들 듯 조용해진다.

침대에서 뒤척이던 나는 새벽의 푸름이 남아 있는 거리로 나선다.

일출 전의 하늘은 회백색으로 흐려 있다.

잠이 덜 깬 거리는 조용하고, 허기진 소들이 먹을거리를 찾아 골목길을 배회한다.

어둑한 한쪽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던 아낙이 나를 보자 얼른 일어나 자리를 피한다.

◆ 푸쉬카르 아침은 평화

나는 호수를 끼고 마을길을 걷는다.

호수 건너편으로 푸른 색조의 브라흐마 사원이 보인다.

힌두교의 성지인 푸쉬카르는 천지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손에 들린 연꽃이 지상에 떨어져 호수가 생겼다는 신화를 간직하고 있어 각지에서 많은 순례자가 찾아든다.

또한 매년 낙타 축제가 성대하게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푸쉬카르의 아침은 언제나 평화롭고,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저녁에 호수 건너편의 삼각산에서 바라보는 사막의 일몰은 장엄하고 감동적이다.

그게 내가 인도 방문 때마다 이곳 푸쉬카르에 들르게 되는 이유다.

마을 초입의 버스 정류장 부근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쌀쌀한 사막의 아침 기온 탓에 다들 웅크린 채 낡은 모포로 몸을 감싸고 있다.

순례자들이다.

걸인과 구분되지 않는 누추한 행색의 일행 중엔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들도 보인다.

하나같이 여위고 꾀죄죄한 몰골이다.

나는 문득 철모르는 아이들에게 신은 어떤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오직 신앙을 위해 풍찬노숙하는 그들 순례자들의 궁색한 생활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 트럭 범퍼에도 사는 신

난 다시금 김동리의 소설 '사반의 십자가'에 나오는 열혈당 당원인 '사반'의 말을 떠올린다.

로마 병사에 의해 골고다의 언덕에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반은 메시아인 예수에게 간절하게 묻는다.

이 땅에서 영광이 없다면, 억압받고 고통받는 민중을 구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약속한 하늘에서의 영광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인도를 떠도는 내내 나는 수시로 그런 의문에 시달렸다.

예수에게 던진 사반의 물음은 곧 인도를 향한 나의 질문이었다.

서구식 교육을 받은 내가 본 인도는 인간을 위한, 인도적이고 인본적인 배려보다 신만을 숭배하는 신들의 나라로 비쳐졌다.

어느 곳이나 걸인이 들끓고, 쓰레기와 오물로 세상은 더럽혀져도 오직 신만은 인간들의 숭앙을 받으며 오만하게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실 인도엔 무수한 신들이 존재하고 있다.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숱한 신전과 사원들, 궁전과 동굴사원, 신의 형상을 한 정교한 조각들, 링가와 신상과 그림과 부조들. 그것들은 모두 신을 숭배하며 신에게 봉헌된 것들이었다.

또한 트럭 범퍼나 릭샤 앞, 골목 담, 상점 입구나 나무 둥치, 산이나 계곡, 건물이고 뱃전이고 간에 신의 형상이 없는 곳은 없다.

신은 어디서나 그 영원하고 거대한 눈길로 인도인들의 삶과 죽음을 냉엄하게 지켜보고 있다.

◆ 버러지 같은 삶…내세 기약

신의 그림자가 너무 크고 짙은 까닭일까. 인도인들의 삶은 대개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빈한하고 누추했다.

비록 그들이 항상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성내거나 절망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아도 그들은 도처에서 현세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노동과 가난과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렸다.

게다가 아직도 불평등하고 비인간적인 카스트 제도가 그들을 옥죄고 있다.

하층민들은 짐승이나 버러지처럼 구차하게 생을 이어가고 있다.

이 고난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신의 섭리에 겸허하게 복종하고 헌신하며 내세를 기약하는 일 뿐이다.

그런 연유로 인도에선 인간의 의지란 게 중요하지 않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 전근대적인 카스트 제도가 유지되는 것도 이런 개념과 맥락이 닿아 있다.

신들의 나라 인도는 인간들의 성공담이나 영웅담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직 신들의 이야기만 존재한다.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서사시가 있을 뿐이다.

그 이야기 속엔 시바가 있고 비쉬누와 락쉬미, 칼리가 있고, 인드라와 부처가 있다.

천연두의 여신 시톨라와 판다바스와 원숭이 장군 하누만이 있고, 시바신을 태운 흰 소 난디와 코끼리 모습을 한 가네샤가 있다.

시바신이 사랑하는 코브라가 있고 공을 세운 생쥐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승리를 다룬 이야기는 없다.

신들의 나라에서 인간은 하나의 피조물이자 신기루처럼 덧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하얀 도티를 입은 젊은 남자가 앞을 가로막는다.

그는 자신이 신의 사제인 브라만이며, 나를 위해 신의 축복을 내리는 의식을 행해주겠다고 말한다.

나를 호수 옆 가트로 데려가서 몇 가지 간단한 의식을 행하고는 돈을 뜯으려는 얄팍한 수작이다.

나는 그저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내가 어쩐지 낯이 익다는 걸 깨달은 그는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떨어져 나간다.

◆ 재물에의 욕심도 신의 의지

호수 주변의 레스토랑에 들른다.

특별히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뷔페 식당이다.

이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을 오르자 출입구 천장에는 여느 상점처럼 잡귀를 쫓는 노란 라임열매와 몇 개의 칠리 고추가 실에 꿰여서 걸려 있다.

사십 대의 뚱뚱한 주인 남자는 막 카운터 앞에 걸린 몇 개의 신상(神像)이 든 액자에 향 연기를 사르는 중이다.

오늘도 장사가 잘 되기를 신에게 비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코끼리 얼굴을 한 가네샤(Ganesha) 신이다.

장사를 하는 집이라면 대개 하나쯤 가네샤 신의 사진이나 조각상을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신상을 향해 향을 사르고, 절을 올린다.

그런 인도인들의 태도 뒤에는 '신의 뜻대로'라는 믿음이 숨어 있다.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울러 재물에 대한 욕심을 부리는 건 자신이 아니라 가네샤인 것이다.

나로선 이 교묘한 치환(置換)이 놀라울 따름이다.사진: 우체국 마당에 세워진 시바 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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