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교과서, 영화에 딴지 걸다

입력 2004-07-16 13:23:02

이재진 지음/푸른숲 펴냄

'터미네이터',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카메룬은 1994년 '트루 라이즈'(True Lies)를 내놓았다.

비밀첩보요원이 핵 테러리스트를 소탕한다는 뻔한 내용이지만 액션장면은 그럴싸하다.

영화 후반부, 핵폭탄이 먼 바다에서 폭발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남녀 주인공은 낭만적으로 입을 맞춘다. 핵폭탄이야 터지든 말든 입술 크기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할리우드식 철없음'에 딴죽을 걸고 싶지 않지만, 과연 그런 행동을 할 만큼 낭창한 상황인가는 의문스럽다.

항공우주공학도 출신인 이재진씨가 지은 '과학교과서, 영화에 딴지걸다'는 영화 속에 나타난 비과학적 장면들에 유쾌한 메스를 들이댄다.

영화 설정상 문제의 핵탄두는 10kt 정도로 미국이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것(15kt)보다 위력이 약간 약하다.

화면상 핵폭탄이 폭발한 곳과 주인공과의 거리는 20~30km 정도. 이 거리라면 주인공들은 1천~3천mSv 가량의 방사선에 노출된다.

실제 상황이라면 주인공들은 며칠 안 가 머리카락이 줄줄 빠져 대머리가 되고 빈혈.암을 앓으며 엄청난 구토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데도 주인공들은 아무 일 없이 해피엔딩을 즐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주인공은 유전변이를 일으킨 독거미에 물린 뒤 거미와 같은 초능력을 발휘해 악당을 물리친다.

역시 말이 안된다

0.001mm 굵기인 실제 거미줄이 공기중에 노출돼 굳는 시간은 0.025초 정도. 스파이더맨이 발사하는 거미줄(1mm 정도로 추정)이 굳는데 걸리는 시간은 7시간 정도. 따라서 스파이더맨이 현장에 도착할 때 쯤 상황은 종료되고 악당들은 집에서 샴페인 파티를 즐길 것이다.

거미는 거미줄을 항문으로 뿜는다.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손목에서 뿜어내는 것은 철저한 위생 관념 때문일까.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간은 지구 중심 깊은 곳에 '시온'(zion)이라는 도시를 건설, 인공지능과 맞선다.

지각을 뚫다보면 필연적으로 멘틀층과 만나는데, 다이아몬드같은 물질로도 뚫을 수 없는 초강도 물질이다.

굴착 가능한 한계 깊이는 13km. 설사 지구 내핵까지 들어갈 수 있다 치더라도, 온도가 섭씨 6천도이고 압력이 350만 기압이나 되는 지구 중심부에 도시를 만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매트릭스'에서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배양해 동력원으로 쓴다는 설정이 나오는데 과연 가능할까. 인구가 100억명이라고 가정하고 초당 4명이 태어나며 1.7명이 사망한다고 가정했을 때 인공지능 컴퓨터의 인간 몸 동력원은 104일 37분만 지나면 동이 난다.

석달여만에 인공지능 컴퓨터도 파멸의 길을 걷는다는 이야기이다.

상황에 억지가 있고 과학적 오류 투성이라 하더라도 골머리 아픈 현실을 잊는데는 영화가 제격이다.

물론 이 책은 영화의 과학적 오류를 지적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과학이 결코 우리 생활과 떨어져 있지 않으며, 흥미진진한 학문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라는 소재를 택했을 뿐이다.

청소년을 겨냥했지만 어른이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저자는 인터넷 패러디 사이트 '딴지일보'에서 '구라도리'라는 필명으로 '폭로! 영화 속의 비과학적 구라'를 연재한 인물이다.

특유의 걸쭉하고 맛깔스런 입담이 책 전반에 넘쳐난다.

각장의 말미에 붙여놓은 '읽든가 말든가' 코너는 과학적 현상을 둘러싼 시대적.사회적 상황을 통찰하게 한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