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역사 2천년 껑충

입력 2004-07-16 09:05:33

'3천년 전인가, 5천년 전인가'

대구의 역사가 불과 1년 사이에 무려 2천년이나 거슬러 올라갔다면 뭣 때문일까?

예전에는 대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점이 약 3천년 전인 청동기 시대로 알려져 왔다.

청동기시대 유물인 민무늬토기(無文土器)를 비롯해 간돌검(磨製石劍)과 붉은간토기(紅陶) 등이 대구와 인근 지역에서 출토됐기 때문.

이에 따라 대구시청 공무원들에게 해마다 배포되는 업무일지나 시의 홍보물에는 대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대를 청동기로 기록, 대구 역사를 약 3천년으로 잡았다.

그러나 대구시는 올해부터 대구 역사를 2천년 더 올려 잡은 자료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것은 토기 때문이었다.

지난 1998년부터 99년까지 대구박물관과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이 각각 대구 수성구 상동 지석묘 유적지와 대구 북구 서변동 택지개발지구에서 발굴한 빗살무늬 토기편과 빗살무늬토기의 중요성이 인정된 것. 빗살무늬 토기는 청동기보다 앞선 신석기시대의 대표적 유물이다.

빗살무늬 토기는 남해안 지방에서 많이 발견됐는데 대구에서도 처음 발견됨에 따라 대구에 사람이 거주한 흔적의 역사를 종전 3천년에서 5천년으로 바꿔야할 상황이 됐다.

상동 지석묘에서 발견된 빗살무늬 토기편은 신천의 자연제방 위에 위치하고 서변동의 빗살무늬 토기는 동화천 근처 평야지대에서 발굴됨에 따라 대구의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주로 하천가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같은 대사건(?)이 일어나자 국립 대구박물관은 지난 2001년 9월 재빨리 '대구 오천년' 전시회를 열고 '대구역사 바로잡기'에 나섰다.

당시 박물관 관장이던 김권구씨는 "새롭게 발견된 신석기 시대 중기의 빗살무늬 토기 자료 등을 근거로 대구 역사는 과거보다 2천년 더 소급, 5천년으로 바꾸게 됐다"고 특별전시회 개최배경을 밝혔다.

문희갑 전 대구시장도 "대구가 고대부터 지금까지 민족사에서 선도적 역할을 다해 왔으나 체계적인 조명이 안돼 대구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천명하는데 미흡했다"면서 "특히 고대사에서 대구가 차지하는 위치가 명쾌히 규명되지 못했던 만큼 대구역사의 뿌리를 찾아 널리 알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축하했다.

하지만 대구시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했다.

지난해까지 대구 역사를 3천년으로 기록하다 올해들어서야 업무일지에 대구 역사를 5천년으로 변경한 것.

그러나 아직 대구시청 홈페이지에는 청동기시대부터 대구에 사람이 살았다고 적어 놓는 등 대구 역사 바로잡기 작업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구시 정원재 기획관은 "대구 역사 바로잡기에 나서 업무일지와 일부 자료.홍보물은 5천년으로 고쳤으나 아직 3천년 역사로 잘못돼 있는 것도 적지않아 보완작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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