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익)수도이전, 대안(代案)이 있다

입력 2004-07-15 10:00:21

여권의 진화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도이전을 둘러싼 논의가 날로 고조되고 있다.

처음에 '배가 이미 떠났다'고 딴전을 피우던 정부여당이 '천도인가 아닌가' 정도로 얼버무리려다가 안 되니까, 이제는 '명운을 걸겠다'고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섰다.

하나의 무리한 정략을 억지로 합리화하려다가 여러 무리한 정책을 빚어내더니 마침내 국가의 기조까지 건드리는 감당키 어려운 일을 벌이고 있다.

돌이켜 보면 이런 분란은 사실상 예약된 것이었다.

수도이전이라는 그야말로 국가백년대계를 특정지역의 득표 전략으로 쓴 것부터가 얕은 꾀였다.

그리고 타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살까 두려워 정확한 입지를 정하지도 않은 법안을 '신행정수도건설법'이라는 괴상한 말의 조합으로 축소 포장하고 다른 법에 끼워 졸속 처리한 것은 무책임했다.

야당도 할말이 없게 됐다.

'어어' 하면서 어정쩡하게 따라다니다가 '재미'도 못보고 야합한 바람에 이제와 딴소리를 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야말로 생콩가루 집어먹은 꼴이 되어버렸으니, 모든 게 다 자업자득이다.

수도이전의 이유라는 걸 듣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 사람들이 최소한의 식견을 가졌는지조차가 의심스럽다.

서울-수도권이 과대 과밀하여 수도를 빼어내는 것이고 그리하면 균형발전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두 가지 논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균형발전과 수도이전 사이에 논리적 필연성이 없다는 점이고, 둘째는 수도이전의 논리를 공간논리에만 국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도의 입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안보, 통일의 국정전반에 관련되는 사안이다.

공간논리와 그에 관한 정책의 전공자로서 단언하건대, 이렇게 물리적 공간만 들여다보면 그 공간마저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분단고착적이고 반문화적, 반역사적이라는 비판에 항변할 길이 없다.

급한 김에 신수도 위에 통일수도 하나 얹기를 공언하는 판이다.

국가경쟁력에 관한 물음에도 대답이 궁하고, 강원도, 경상도와 전라도는 어떻게 좋아지느냐니까 10-20개의 신도시 건설을 비롯하여 온갖 대형 국책사업들을 급조하기에 영일이 없다.

그 돈 어디서 다 나오느냐는 반문에 예산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동문서답이다.

미군이 규모를 줄이고 남하하는 판에 수도까지 옮기면 안보는 어찌되느냐니까,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말을 또 급조해 내놓는다.

한편으로 대선공약이라고 입막음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국민투표 공약은 안 지켜도 괜찮다고 우기면서도 태연하다.

국가경영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고, 수도이전이란 온 국민이 뜻을 모아 하는 축제라야 한다.

오죽하면 그렇게 부화뇌동하던 TV 방송국마저 '그게 아닌 것 아닌가'로 돌아서고 있을까? 잘못은 빨리 인정할수록 좋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더욱 그렇다.

'아래 사람들'이란 위에서 '옳다'고 우기면 그저 그렇게 복창하고, 위에서 '하라'고 윽박지르면 그리 하는 시늉이라도 하게 되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가서 비로소 곪아터지게 해서는 정치가 아니다.

그럼, 대안이 있느냐고 물을 것이다.

물론 있다.

다만 늦으면 비용이 늘어나고 기회가 사라질 뿐이다.

어차피 되지 않을 일, 국민투표고 뭐고 궁색하게 따지지 말고 이쯤해서 수도이전계획을 중지하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비로소 대안이 보일 것이다.

그것도 꽤 괜찮은, 아니 수도 이전보다는 효과가 열배나 나은 정도(正道)의 대안이 있다.

첫째,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는 충청권 사람들의 실망이 클 것이다.

수도 대신 미래 산업을 선도할 기업도시나 과학기술도시 하나 잘 만드는 것이 바른 해법일 것이다.

둘째, 진정 서울 집중을 완화하려거든, 말 한마디로 수도를 옮길 정도로 과도하게 집중된 대통령의 권력부터 지방에 나누어주라. 사람과 기능을 서울로 끌어당기는 힘의 원천은 집중된 권력에 있다.

셋째, 진정 균형발전을 이끌어 내려거든, 지방 국립대학에 신수도 건설비의 몇 분의 일이라도 지원하라. 지식사회에서는 지방 명문대가 우뚝우뚝 서야 할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도 선택과 집중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넷째, 진정 수도권을 견제하게 하려거든 한려수도에 멋들어진 국제관광휴양벨트를 조성하라. 수도권에서 뚝 떨어져서 태평양 너머를 내다보고 생산을 하는 곳이라야 카운터 폴이 된다.

30년 뒤에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은 신수도가 아니라 그 쪽일 것이다.

다섯째, 진정 수도이전 논의를 하려거든, 통일수도에 관한 논의를 제대로 시작하라. '신행정수도건설'이 반통일적, 분단고착적이라면, 통일수도는 논의 자체만으로도 이미 통일지향적, 분단극복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을 준다.

대안이 맘에 안 들면 또 다른 대안을 구해 보라. 그러고 나서도 굳이 내친걸음을 가려거든 국민투표라도 하고 가라. 그리고 정권의 명운을 걸되, 나라의 장래만은 제발 걸지 말라.

유우익 서울대교수.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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