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폐쇄적인 지역 사회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중심에 주부들이 자리잡고 있다.
가정의 중심으로 경제권을 쥐고 자녀교육을 책임지고 소비의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주부들. 매일신문 창간 58주년을 맞아 실시한 '대구.경북 주부 의식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을 담아 주부들의 달라진 의식과 생활상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요즘 주부들은 자기 표현에 적극적이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몸매를 드러내는 등 과감해지고 있는 패션. 모임에 가거나 가정에서도 주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9일 한 자리에 모인 대구지역 중년 남성 4명으로부터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는 주부들의 모습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주부들의 몸매를 드러내는 패션에 대해
▲곽병진=주부가 옷 입는 기준은 남편이 되는 것 같아요. 아내의 옷차림으로 남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이 단정한 원피스 차림에 백을 든 모습이라는 한 조사 결과를 보고 아직도 이렇게 남성들의 시각이 보수적인가 싶어 놀랐어요. 가장 싫어하는 아내의 옷차림은 야한 느낌을 주는 노출 패션이라고 하는군요.
▲김정기=아내는 단정한 차림을 했으면 좋겠지만 주위 여성이라면 노출 패션이 좋아 보이는 게 남자들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웃음)
▲박태환=요즘 40, 50대 여성들이 민소매에 가슴.등 부분이 파인 옷을 입고 다니는 건 분수에 맞는 복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잉 노출은 성 범죄의 미끼가 되는 복장으로 재판에서 원인 제공 부분이 큰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곽=요즘 여성들이 사회 진출을 활발히 하고 있는데 밖에서 일할 때 개성을 표현하는 옷차림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감이 있어 보일 것 같아요.
▲김=문화센터에 강의를 나가 40, 50대 주부들에게 물어보니 설문결과처럼 노출이 "좋다"는 대답이 많더군요. 교직이나 직장생활을 하셨던 분들은 "아니다.
조신한 복장이 좋다"며 자신의 환경에 따라 다른 입장을 보이셨어요. 노출은 자신감의 표현인데 자기 개발을 전제로 해야지요. 뱃살이 두 세겹씩 접히는데 노출하면 객관적으로 추한 느낌이 드는 것 아닙니까.
▲박세진=경제적·사회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조금씩 상승하고 자아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패션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노출 욕구는 본능에 가깝습니다.
경우에 따라 노출 패션이 어울릴 때도 있지요. 요즘 맨발의 샌들 패션이 트렌드인데 이에 맞춰 발 관리와 몸매 관리를 충분히 하고 코디하는 훈련이 덜 돼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때와 장소에 맞는 옷차림을 잘 모른다는 건 주부들이 그만큼 문화적 혜택을 못 받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남자들의 책임일 수도 있지요. 자기는 밖에서 할 것 다 하면서도 아내는 안 데리고 나가니 말이지요. (웃음)
아내의 옷차림은
▲박세=아내와 만난 지 15년 정도 됩니다.
올해가 결혼 10주년이지요. 장모님이 짧은 옷, 야한 옷 좀 그만 사주고 점잖은 옷을 사주라고 얘기하시는데 입어서 어울리고 장소에 맞고 소화해 낼 수 있다면 여성스러움을 극대화하는 옷이 좋은 것 같아요.
▲곽=주위 남성들을 봐도 아내가 긴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아요. 옷이 파이고 안 파이고가 아니라 어울리느냐 안 어울리느냐가 중요합니다.
▲박세=우스갯소리로 미인은 편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하지요. 현실적으로 나이가 덜든 젊든 미인은 대접을 받습니다.
진짜 노출 패션을 하려면 몸매·피부 관리와 교양있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노출이 심하다고 성 범죄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곽=예쁘고 몸매가 좋은 여성만 노출할 수 있다는 시각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몸매가 안 예뻐도 노출해 더 예뻐 보이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어느 정도 포용력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제 아내 역시 디자이너이다 보니 최대한 자유롭게 옷을 입는 편입니다.
옷이 마음에 안 들면 외출을 포기할 정도이지요. 집 부근 식당에 가도 시계 등 액세서리를 갖추고 상황에 맞게 옷을 입습니다.
▲김=아내나 저나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좋아하고 실용적인 걸 추구하는 편입니다.
2만 원이 넘는 옷을 사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옷 때문에 낭패를 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사 신은 빨간 운동화를 보고 아내도 예쁘다고 똑같은 걸로 사 신고 다닙니다.
학교 강의, 전시회에 갈 때도 빨간 운동화를 신는데 이 신발을 신으면 기분이 상승돼 작업할 때도 도움이 됩니다.
(짙은 청색 재킷 차림에 빨간 운동화는 첫 눈에 시선을 끌었다)
▲박태=결혼한지 18년 정도 되는데 아내는 평상시에 캐주얼한 차림으로 깨끗하게 입는 편입니다.
정장이 한 두벌 있지만 예식장에 갈 때나 부부 동반 모임 등 행사에 참석할 때 입지요. 전업주부의 옷차림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할 말은 하고 사는 요즘 주부에 대해
▲곽=요즘 젊은 남성일수록 집안에서 할 말을 못 하고 사는 것 같아요. 가정사에 대해 아내가 저보다 할 말을 더 많이 합니다.
아파트 부녀회 감사를 맡고 있는데 주부들이 남자보다 표현력이 풍부해 현실성있게 얘기를 잘 하고 자기 공부도 많이 하는 것 같아 이런 논의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김=TV드라마 '애정의 조건'에서 아버지(한진희)가 이혼한 딸(최시라)에게 "엄마가 너처럼 행동했다면 우리 가정은 존속되지 못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사가 나오더군요. 급격히 변하는 사회에서 여성이 할 말을 하고 자기 주장이 분명해지면서 가정이 붕괴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박세=저는 시각을 달리합니다.
60, 70대 아버지 세대에서 그런 논리로 말씀하시는데 남성 중심적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부가 집안에만 있고 정보가 차단된 과거와 같은 상황에서는 인내한다기 보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 여성들은 정보량이 많아지고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방법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가정에서 발언권이 높아지고 이혼율도 높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대의 패러다임이 변했으니 과거에 여성이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면 이제 반대로 가정사만큼은 남자가 양보해 균형을 이뤄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항상 이런 토론을 할 때 남자가 가해자가 됩니다.
남자는 어디 할 말을 다 하고 삽니까. (웃음) 사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할 얘기를 다 못 하고 있지 않습니까.
▲박태=할아버지, 아버지대의 부계사회가 10, 5년 전부터 모계사회로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례로 결혼한 30대 전후 남성들을 보면 친가보다는 처가에 엄청 잘 하더라구요. 모계사회가 되면서 여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가정이 화목해야 하는데 시끄러우면 안되잖아요. 여자는 80, 90% 할 얘기 다 하지만 남자는 40, 50%밖에 못 합니다.
▲곽=그러면서도 여자의 경제력이 월등하지 않습니까. 남자는 돈 벌어주는 머슴이지요. (웃음)
▲김=모임에 나가도 여자들이 나서서 노래하고 게임하고 남자들은 앉아서 술만 마십니다.
2차도 여자들이 가자고 하면 따라 가지요.
▲박태=마누라하고 가서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웃음) 여자들이 가자고 하니까 억지로 따라가는 것 아닙니까.
▲곽=여자가 편해야 집안이 편한 게 사실입니다.
남자친구들과 모임이 있는데 아내가 여자친구 모임에 가자고 하면 참고 여자모임에 가줍니다.
60, 70%의 친구들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권 신장을 위해 특히 30대 남성들이 희생하고 있습니다.
▲박세=여성을 배려하고 여성을 중심에 세우는 것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집에 가면 대소사를 결정하는 아내를 중심으로 모든 게 이루어지지만 그 속에는 분명 남편의 자신감이 깔려 있습니다.
봐주는 것이지, 지는 건 아니니까요. 별 거 아닌 문제는 아내가 알아서 하라고 해도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부분이 있거든요.
▲김=이제는 여성 스스로 피해자라는 생각을 안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설문조사 자체가 이런 피해의식이 저변에 깔린 것 같네요.
▲곽=봐주는 것과 배려하는 건 다르지 않습니까. 여성 스스로 피해의식을 가지지 않을 때 남자들도 봐준다는 말 대신 배려한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올 것 같습니다.
정리.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좌담 후기=참석자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입조심(?)을 해야 한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이 특정 여성을 '아줌마'로 불렀다가 항의를 받은 예를 들며 '아줌마'라는 호칭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요즘 아줌마들이 무섭다"는 얘기도 있었다.
요즘 남성들이 할 말을 다 못 하고 산다는 부분에 공감한 참석자들은 인터넷에 항의 글이 오르면 어떡하느냐며 근무지는 빼줄 수 없느냐고 진담같은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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