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 대기자의 책과 세상

입력 2004-07-03 08:51:10

한 고비를 넘겼다 싶으면 다른 고비가 턱 버티고 있다.

요즘이 그렇다.

총리가 제 자리에 앉고 개각도 했다.

그런데 무슨 굿을 잘못했나. 또 시끄럽다.

가뜩이나 전문성은 뒷전이니 대권으로 가는 훈련과정이니로 호된 질책들이 따랐는데 난데없는 인사청탁으로 다시 북새통이다.

태풍 민들레는 북상 중이고 굵은 빗방울들은 후두둑 나무라듯 두들긴다.

누구를?

답답할 게다.

두터운 신임들이 왜 이리도 어울리지 못하고 소리들만 요란하게 내는가. 이런것도 개혁하는 소리인가. 삼국지의 간웅 조조. 그의 둘째 아들 조식이 스스로 위(魏)의 문제(文帝)라 칭한 형 조비 앞에 불려 나와 불과 일곱 걸음을 걸으며 지은 시라는 유명한 '칠보시'가 생각난다.

煮豆燃豆箕(콩을 삶기 위해 콩 대를 태우니)

豆在釜中泣(가마 속 콩이 뜨거워 우는구나)

本是同根生(본래 콩과 콩 대는 같은 뿌리에서 자란 것인데)

相煎何太急(서로 태우는 것이 어찌 이리 급한가)

급한 사람들끼리 모였으니 콩 대 타는 소리가 어쩌면 자연스럽다.

타다닥 탁탁. 지금은 아무리 시골이라 해도 이런 콩 대 타는 소리는 듣기 힘들다.

하물며 서울 한 복판에서 이런 소리가 나다니. 정말 난감하고 한심하다.

그런데 어느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때는 하필 콩 대를 태우지 않고 무엇을 태웠는지 타다닥 거리며 타는 소리 대신 뒷전에서 히히덕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불 꺼진 뒤에야 소리가 요란하다.

알다가도 모를 콩 대 태우는 사람들.

'칠층산'. 영성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토머스 머튼 수사의 자전적 고백록. 20대 젊은 나이 때는 재즈광이기도 했던 그다.

그런 그가 혹독하기로도 유명한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한치의 가식이나 숨김없이 기술하고 있다.

삶에 대한 풍부하고 깊이 있는 생각과 자신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묘사는 현대의 극사실화를 보는 듯하다.

인생에는 누구나 숱한 장애와 유혹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그렇지만 그는 숨기지 않았다.

좌절과 실의 속에 방황하던 어둔 시절을 거침없이 이야기했고 결국 수도원에서 만난 아름다운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그 황홀함. 자신과의 한 판 승부에서 수치심도 잊고 신앙이라는 이름의 위대한 전차를 타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그가 가진 모든 종류의 신앙을 한 번 되새겨 보게 하는 좋은 계기도 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운을 뗀 파스칼은 "비록 그것이 진리를 발견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자기 생활의 질서를 잡는 데는 큰 역할을 하게되며 이것 이상으로 뜻 있는 일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고작 콩 대 만을 태우는 일로 마치 개혁의지를 불지르는 착각에 빠진 이들은 '칠층산'을 꼭 읽어 볼 만하다.

붕어빵을 아무리 구워 본들 붕어는 찾을 수 없듯이 자신에 적절치 못한 책들 읽어보아야 베스트 셀러만 될 뿐이다.

"자기 자녀들은 하이에나의 문화척도에 따라 성장하도록 방치하면서 하느님께 평화를 갈구하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울고불고 불평하는 더할 나위 없이 뻔뻔스러운 짓을 감행하고 있다".

"고통은 피하려고 애를 쓸수록 더 큰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진리다.

고통은 피하려고 바둥대는 사람이 가장 심하게 고통 당한다.

그리고 그 고통은 지극히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에서부터 오는 까닭에…자신의 존재 자체가 바로 그 고통의 주체요 원천이다".

"진실로 하느님은 당신 존재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내 영혼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기 시작하셨는데,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그 은총이 어디서 어떻게 솟아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마다 소진할 수 없는 생명력을 새롭게 하면서 계절을 따라 끝없이 순회하는 이 엄청난 기도에 전념함으로써 내 안에서 자라고 있던 평화와 힘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어느 일면 숨막히는 무게를 느끼게도 하지만 그런 가운데 시원한 한 줄기 소나기도 감지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소용되는 것은 무엇인가. 조용해지는 연습이다.

무엇 때문에 시끄러워 해야 하고 무엇이 이토록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지도 알아내야 한다.

그러려면 조용히 생각하고 한동안 사색해야 한다.

법정에 선 후세인. 그가 그래도 한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은 연극"이라고. 무엇이 이것이고 무엇이 연극인가. 지금 우리에게는 태풍 '민들레'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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