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습득은 장거리 레이스

입력 2004-06-25 09:12:29

부모 과욕 오버페이스 불러

학교에서 장거리 마라톤이 열리고 있다.

코치는 선수의 기량에 맞게끔 선수를 트레이닝시켜 왔고, 든든한 후원자인 어머니는 물주전자와 수건을 준비해 응원하고 있다.

드디어 출발 신호가 울리고 주자들이 출발한다.

선수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있는코치는 경기가 장거리 레이스인 만큼 안정되게 뛸 수 있도록 구간별 적정 속도를 정해 놓았다.

선수가 무리한 속도를 내다가 체력과 의욕이 떨어져 레이스를 포기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속도를 완만하게 조정해야 하는 구간에 이르자, 전체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어머니가 갑자기 코치의 만류를 뿌리치고 선수에게 계속 고속 질주를 하라고 다그친다.

후원자의 강요에 등 떠밀린 선수는 할 수 없이 무작정 달리게 되고 이내 체력이 바닥나 경주에 대한 의욕을 잃어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이를 참지 못한 어머니가 어느 새 자신도 모르게 물주전자를 들고 다른 선수들과 뛰고 있지는 않을까?

이러한 상황은 마라톤 경기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겠지만, 영어교육 현장에서는 실제 피부에 와 닿는 드물지 않는 현상이다.

영어를 비롯한 언어 습득의 과정은 장거리 레이스와 같은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영어 습득에서는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달려가면 성공의 결승점에 누구나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장거리 레이스는 재도전할 수도 있지만, 시간의 흐름과 병행되는 영어 습득은 연령과 결부된 단계별 언어 발달 기회를 놓칠 경우 시간을 되돌려 다시 시작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버페이스를 해서 경기를 포기한 마라톤 선수처럼 부모의 과욕 때문에 무리한 행진을 강요받게 되면 학습자는 영어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게 되고 그 결과 그 단계에서 쉽고 바르게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게 된다.

언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영어 구사력 습득과정은 보통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메카니즘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교실을 지키는 선생님은 이 점을 잘 알고 마라톤 경주의 코치와 같이 속도나 단계를 조정한다.

따라서 뛰는 선수의 기량에 대한 평가와 적절한 단계 결정은 어머니보다 선생님의 몫으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학부모 면담을 해 보면 직접 물주전자를 들고 뛰는 경우를 만날 때가 있다.

자녀 교육에 대한 열의는 높이 사지만 대부분은 요즘과 같은 영어교육의 혜택을 경험해볼 기회가 본인들에게는 없었다.

따라서 자신이 가 본 적이 없는 길로 자녀를 보낼 때는 함께 그 길을 가고 있는 교실 선생님의 조언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강현지(월드와이드 외국어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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