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논단-미국인의 이라크 인권침해

입력 2004-05-18 11:35:55

후세인 대통령이 반대자들을 고문했던 것으로 유명한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에서 최근 미군에 의하여 이라크 수감자들이 인권침해를 당한 사실들이 사진과 함께 전 세계에 공개되었다.

이 사진들은 미군이 이라크 수감자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장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사건이 공개되자 미국 내 여론의 비판은 말할 것도 없고 아랍권의 분노는 거세기 짝이 없었다.

이러한 엽기적인 사건이 재선 운동에 몰두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 개인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될 뿐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한 미국의 도덕적 자세에 대하여 심각한 비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부시 대통령이 사과하였으나, 아랍권의 반응에는 변함이 없었다.

특히 사건의 핵심에 있어서 20세가 겨우 넘는 미국 여성에 의한 성희롱 장면이 사건의 폭발성에 휘발유를 붓는 효과를 가져왔다.

모든 유사 사건에서와 같이 이 사건의 피고석에 있는 사람들로서도 할말은 있을 것이다.

2003년 말 아직도 치안이 잡히지 않은 이라크의 상황하에 매일 수백 명의 재소자들이 증가하는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에서 훈련되지 못한 많은 예비역 인원들이 거리에 폭탄을 장치한 테러단원을 찾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그 과정에서 '몇 안되는 썩은 사과'가 나오는 것은 불가피하며 이들 수명의 미국 관헌들의 변태적인 행위는 미 군대 전체의 도덕적 수준에 대한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건의 내용이 점차 밝혀지면서 금번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 사건은 '몇 개의 썩은 사과'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정책과 조직이 안고 있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부각되었다.

21세의 적고 '순진한' 잉글랜드 여성 행정보조원과 조사를 받고 있는 다른 동료들의 진술에 의하면 그 들의 성적 학대행위가 개인적인 변태 행위가 아니라 피의자들을 조사에 용이하게 응하도록 "부드럽게 만들어 달라"는 군수사관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수사를 위하여 강제적인 조치는 허용되지만, 고문은 안 된다는 것이 국제법이고 바로 미국 국내법이다.

포로에 관한 제네바 협정이나 테러금지에 관한 국제 협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어떤 국내법도 언론에 공개된 그러한 비인도적 행위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미국 수사관들의 생각에는 아랍 남성에게 가장 수치심을 자극시키는 성적 모욕행위가 피의자들을 자백케 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생각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같은 이유에서 이와 같은 성적 학대행위가 아랍인들의 반미감정을 자극하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으로 부각된 문제는 전쟁이나 테러의 경우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비인도적이고 위법적인 수사관행을 막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범죄용의자의 자백을 받기 위하여 강압적인 수단을 쓸 때에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첫째, 분명한 수사의 룰(rule)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고, 둘째, 이 룰을 숙지한 훈련된 인원이 있어야 하며, 셋째, 탈선의 경우 관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감시관리체계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의 경우 이 3가지 요소가 모두 결여되어 있었다.

원인이야 어떻든 이 사건이 미국의 국익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부시 대통령이 아랍 세계에 대하여 사과를 했으나 그 효력은 크지 않았으며, 미국의 대 이라크 침공의 명목이 대량살상무기 저지에서 이라크의 인권존중과 민주주의 앙양으로 바뀌어진 다음에 일어난 미국의 인권 침해는 누구에게도 대단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 동안 많은 인명피해와 경제적 비용으로 치른 대 이라크 정책이 몇 사람의 황당무계한 행동으로 모든 관련자들에게 불이익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아랍과 전 세계에 대한 미국의 이미지에 지속적인 오점을 남겼다.

그러나 크고 길게 보면 온 세계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이 자신의 결함과 오만에 대하여 눈을 돌릴 수 있는 계기를 준 이번 사건은 미국 자신과 전 세계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봐야할 것이며 특히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의 인권침해사건이 미국인 자신들의 제보에 의하여 발각되고 보도되고 비판되어 왔다는 사실은 검은 구름 속에 깃들인 일말의 은빛 받침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유종하(서강대 교수.전 외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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