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시인 具 常

입력 2004-05-11 15:59:05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오늘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원로시인 구상(具常.85)씨가 지난해 '한국문인'(10.11월호)에 공개한 유언장과 함께 발표한 시 '오늘'이다.

혼탁한 세상의 우리에게는 금언이요, 빛나는 교훈이 아닐 수 없었다.

▲폐 질환으로 지난해 9월부터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병마와 싸우면서 발표한 그의 이 시와 유언장은 '감동' 그 자체였다.

더구나 장애인 문학의 발전을 위해 '솟대문학'에 2억원을 쾌척한 데 이은 일이어서 더욱 그랬다.

평생 구도자의 자세로 일관하면서 모든 생명의 구원을 노래해온 그의 맑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리가 '삶은 영원 속의 한 과정'임을 일깨웠었다.

▲'오늘을 바로 영원'으로 여겼던 그가 오늘 새벽 3시 40분 그 다른 과정의 영원 속으로 홀연히 떠났다.

미리 쓴 유언장으로 세인들을 숙연하게 했던 그지만 기관지 절개 수술을 받은 탓에 정작 마지막 유언은 남기지 못한 채…. 그가 안장될 곳은 경기도 안성 천주교묘지이며, 13일 오전 8시 강남 성모병원에서의 발인에 이은 장례식(미사)은 김수환 추기경 집전으로 이날 오전 10시 명동성당에서 치러지게 된다.

▲1919년 함남 문천 태생인 그는 서울에서 자라다가 네 살 때 원산 가까운 덕원으로 이사해 성장, 일본 니혼대학 종교과에 수학했다.

해방 후 원산에서 동인지 '응향'으로 등단했으며, 이 때 발표한 시가 '반사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자 월남해 서울에서 활동했다.

연합신문 문화부장으로 재직하다 6.25 한국전쟁으로 피란, 대구에서 종군작가단 부단장, 가톨릭신문.영남일보 편집국장.논설위원 등을 지냈고,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의 강의를 맡기도 했다.

▲서강대.서울대.중앙대,하와이대 등에서 교육자의 길을 걷기도 했던 그는 예술원 회원이었으며, '구상 시집' '조화 속에서' '인류의 맹점에서' 등 많은 시집과 수상집.사회평론집.시론집.희곡 시나리오집을 남겼다.

20여년간 살았던 왜관에 지난 2002년 10월 '구상문학관'이 개관됐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아주 가까웠지만 감투 하나 쓰지 않은 사실로도 유명하다.

광범위한 정신세계를 포괄했던 그의 문학과 청빈했던 삶,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지극한 사랑이 다른 세상에서도 아름답게 꽃피기를 기원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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